• [슈내/캐스딘] 스폰서 캐스 X 첼리스트 딘

    2023. 11. 20.

    by. 시두스

    키워드: 스폰서 캐스, 첼리스트 딘, 피아노 치는 캐스, 합주

    분량: 공백포함 약 21,500자

    오래간만에 썰 백업합니다!

     


     

    연 수입 7백만 달러 떠오르는 신예 애널리스트 카스티엘 콜린스하고 첼리스트 딘 윈체스터 보고 싶다. 둘의 만남은 어느 자선 파티에서였음. 딘의 연주에 아주 홀딱 반해버린 캐스가 각고의 고민 끝에 딘의 스폰서가 되겠다고 결심한 건 건 파티가 끝난 지 사흘 후였음. 네 연주가 머리에서 맴돌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진부한 대사를 하며 연락해온 부자에게 딘은 원하는 게 뭐냐고 부루퉁하게 물었음.

    “아버지가 그새 또 빚을 졌어요? 그건 미안하게 된 일이지만, 그저께인가 파티에서 연주해서 밀린 이자는 다 낼 수 있다고 했잖아요. 이번 달 납기일은 아직 멀었고. 그새 또 파티가 생겼다고 할 참인가요?”

    귀찮은 티가 푹푹 묻어나는 목소리를 듣고 캐스는 깜짝 놀라겠지. 일단 첫째로 자기가 생각한 목소리가 아니었으며 둘째로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이런 재능을 가졌으면서 아직 어느 극단에 소속되지도 않고 유명 첼리스트로 유명세를 치르지도 않았단 말인가? 빚 얘기는 또 뭐고? 캐스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딘은 끊으려고 하겠지.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 어디서 번호를 알아낸 건진 모르겠지만, 저 바쁜 사람이에요. 할 말 없으면 전화 끊어요.”

    진짜 끊을 것처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야 허둥지둥 딘을 막는 캐스.

    “잠깐. 중요한 얘기가 있다. 끊지 말아 주겠나?”

    “뭔데요?”

    “정말로 네 연주가 좋았다. 진심으로. 그런 연주를 들은 건 정말 오랜만이어서, 그래서 파티의 주최자에게 어렵사리 네 전화번호를 얻었지. 가브리엘은 너를… 딘이라고 하더군.”

    캐스가 주절주절 덧붙이자 딘은 아주 미심쩍다는 목소리로 되묻는다.

    “연주요? 내 연주? 첼로?”

    질문 하나마다 고개를 끄덕이던 캐스는 전화하는 중이라는 걸 깨닫고 얼른 맞다고 하겠지.

    “자선 파티에서 내 연주를 들었다고 했죠.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스폰서가 필요하지 않나?”

    요것 봐라? 한쪽 눈썹을 쓱 위로 올린 딘이 물으니 캐스는 드디어 자기가 준비한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쁜 나머지 조금 성급하게 말함. 그 말을 들은 딘 얼굴은 좀이 아니고 아주 많이 딱딱해지겠지.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딘이 뒷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본 바로는 스폰서란 연주자를 고급 콜걸로 여기는 재력을 과시하고 싶은 고약한 부자일 뿐이다. 부르는 대로 가서 연주하고 한번 자주면 하루에도 몇천 달러가 떨어지고 후원이란 이름으로 옷에, 음식에, 집에, 자동차 따위가 문 앞에 쌓여서 존이 실시간으로 늘리고 있는 빚은 단숨에 갚을 수 있게 되겠지만, 딘이 지금까지 스폰서를 받지 않았던 건 샘에게 몸을 팔아 번 돈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임.

    “난 스폰서 같은 거 관심 없어요. 댁이 개ㅂ- 아니, 밀튼 씨에게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아냈는진 모르겠지만, 난 동정이든 후원이든 안 받을 거라구요. 밀튼 씨에게도 그렇게 말해놨고요.”

    그 인간이 못미덥긴 해도 진짜 웬만한 게 아니면 내 번호 안 줄 텐데. 혼잣말처럼 딘이 중얼거린 것을 들은 캐스는 스폰을 받지 않겠다는 대답을 생각해보지 않아서(얼마를 줄지 흥정하는 것 정도만 생각함) 할 말을 잃음. 그렇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딘을 놓칠 것 같아서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막 던짐.

    “넌 가브리엘의 후원을 받고 있는 건가?”

    “예? 이건 또 무슨 개소리지? 내가 개브 후원을 왜 받아요? 받을 거면 새미가― 아. 이건 못 들은 거로 해줘요. 암튼 전 밀튼 씨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부당하게 돈 안 받습니다. 그러니까―”

    “그럼 가브리엘의 파티에는 고용되어 간 거로군?”

    “뭐, 그으렇죠? 밀턴 씨…랑은 좀 복잡하긴 한데 일단 그런 관계라고 할 수 있죠. 근데 그게 뭐요.”

    “-그러면 나도 널 고용하겠다.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서너 번 내 집에 와서 연주하면 격주로 4500 달러를 지급하지. 이런 조건이면 너도 만족하겠지?”

    4500달러라는 말에 딘이 숨을 훅 들이쉼. 캐스는 너무 조금 불렀나 후회했지만, 어디로 들어간 것처럼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려서 가만히 있음. 문이 잠기는 소리도 난 다음에 딘이 헐떡거리면서 말했음.

    “자, 잠깐만요. 밀튼 씨도 한두 달에 한 번 여는 파티를 뭐 맨날 열어요? 돈지랄을 그렇게 할 정도로 돈이 많나? 그럼 진짜 부럽긴 한데 밀튼 씨가 한 번 부를 때마다 얼마 주는진 알고 말해요?”

    “적나?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높여주겠다. 오천은 어떤가. 주에 10시간도 일하지 않으면서 2500 달러를 받을 수 있는 자리는 흔치 않을 텐데.”

    “적다는 뜻이 아니었다고요! 나를 원양어선 이런 데다가 갖다 팔려고 하는 건 아니죠?”

    “그런 짓을 해서 나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뭐지? 그렇게 뛰어난 첼로 실력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환경에 두는 건 나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손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평가를 제법 많이 받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생각이 없지는 않다.”

    “생각 존, 아니, 진짜 없어 보이는데…….”

    “그래서 내 제안을 거절할 건가?”

    “아니, 누가 거절한대요? 그냥 그렇다고요. 생각할 시간 좀 줘봐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진짜 생각에 잠겼는지 딘은 말이 뚝 끊어짐. 캐스는 혹시나 딘이 거절하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하는데 그 고민이 무색하게 딘은 일단 지금 일하는 중이라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겠지. 스폰 안 받겠다는 무명의 음악가를 만난 것도 신기한데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꽤 괜찮은 조건을 두고도 생각해보겠다는 말에 딘이 점점 더 마음에 들기 시작한 캐스는 빨리 전화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자기도 일하러 감.

    딘한테서 연락이 온 건 일주일 뒤 오후 3시였음. 사흘째에 연락을 포기한 캐스는 이미 저장해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서 서둘러 전화를 받음. 확연히 피곤해 보이는 목소리로 언제 어디로 가서 연주하면 되냐고 묻는 것에 걱정이 앞섰지만, 캐스는 딘이 동정을 받지 않는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 주소를 알려줌. 오늘 가도 되냐는 말엔 합당한 보상을 할 테니 뒤에 무슨 스케쥴이 있던 일정을 다 뒤로 미루고 오라고 함.

    초조하게 방에서 보고서를 읽으며 기다리던 캐스는 집사가 손님이 도착했다고 부르자 조급하게 현관으로 나감. 21세기에 안 어울리는 교외 외각의 저택은 넓어서 꽤 빨리 걸었는데도 3분은 걸림. 응접실에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커다란 가죽 가방을 부둥켜안은 딘이 내부를 구석구석 살펴보고 있었음.

    “뭐 하는 사람이길래 집사까지 딸린 집에 살아요?”

    “애널리스트다.”

    “애, 애널? 음, 들어도 전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캐스는 어깨를 으쓱이는 딘을 한참이나 쳐다볼 듯. 이렇게 아름답고 연주를 잘하는 사람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게 조금도 이해가 가지 않았음. 유니콘을 본 것 같은 기분에 넋을 잃고 서 있다가 딘이 첼로 내려놓을 곳 없냐고 물어봐서 소파로 안내하기. 첼로는 캐스를 뒤따라온 집사가 정리하겠다고 들었다가 딘이 전 재산을 빼앗긴 사람 마냥 격렬히 화를 내서 캐스가 집사가 첼로를 갓 태어난 아기처럼 조심스럽게 다룰 것을 깊게 맹세하고 나서야 딘은 겨우 첼로를 넘겨주고 캐스 맞은편 소파에 앉음.

    “바로 연주하는 거 아니에요?”

    “계약서부터 작성하지. 결정할 사안이 많으니까.”

    “오래 걸리진 않죠? 지금 좀, 몸이 안 좋아서. 연주하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꼴불견이잖아요.”

    딘이 망설이면서 말함. 고개를 끄덕인 캐스는 서류 봉투에서 계약서를 꺼내다가 딘을 빤히 보겠지. 잘생겼다고 생각했던 얼굴을 밝은 곳에서 자세히 뜯어보니 확실히 눈그늘이 광대까지 내려와 있고 끼니를 거른 것처럼 뺨이 들어가 있었음. 캐스는 밥부터 먹여야 하는 거 아닌가 하다가 계약서를 쓰고나서 축하의 의미로 식사를 대접하면 되겠지란 생각에 고개를 끄덕임.

    “오늘은 연주할 일이 없다.”

    “계약서만 쓰고 가라고요? 그럼 오늘치는 못 받는 거잖아요. 이 먼 길을 왔다가 그냥 돌아가기엔 수지가 안 맞는데. 주에 서너 번이라고 했으니까 맞추려면 내일 다시 오긴 할 거지만요, 그래도 이건 좀.”

    “물론 오늘 여기까지 찾아와 준 사례비는 넉넉히 챙겨줄 거다. 오늘 우리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빈방 중에서 네가 연주할 방을 고른 후 내일부터 연주할 수 있도록 손을 볼 예정이니 말이다. 그 작업이 끝나면 돌아가도 좋다.”

    “결국 진짜 연주는 안 하니까 그걸로 돈을 받기엔 좀 그런데요.”

    “네 말대로 여기까지 온 수고비라고 생각하면 되질 않나? 리허설을 참여한 보수라고 생각해도 좋다.”

    “전 지금까지 리허설 비용 받은 적 없는데요.”

    “이제부턴 받도록 해. 넌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그럼 자세한 얘기는 계약서를 보며 마저 하지.”

    그렇게 계약서 쓰는데 딘 눈 돌아갈 듯. 크리스마스 같은 대목이 있는 거 아니면 그냥 이 집에 와서 일주일에 서너 번 길어봤자 3시간씩 연주하는데 격주로 2500 달러씩 받지, 거기에 기름값, 옷값, 첼로 유지보수비, 파티에서 연주 시 추가금 다 별도 지급한다지, 연주하고 남는 시간엔 다른 파티 가서 일해도 된다고 하니까 이게 꿈인가 생신가 싶었음. 진짜 원양어선에 넘기려고 그러는 게 아닌지 싶었지만, 원래 거절할 생각이었던 스폰도 받아야 할 만큼 상황이 안 좋아진 딘은 바로 도장 찍음. 계약서 쓸 일 있으면 막 하지 말고 자기한테 보여주라던 샘이 생각났지만,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음.

    딘은 지금 로렌스를 떠나 임팔라 몰고 야반도주해서 개브가 있는 시카고로 온 상태임. 자꾸 자기가 돈 만들어와서 갚아주니까 자기만 믿고 빚 만드는 애비랑은 도저히 같이 못 살 거 같아서 존이 술 마시고 기절한 틈을 타서 빚 갚는 도중에도 샘 대학 등록금 하려고 모았던 돈 다 들고 튄 거임. 겨우 이자 다 갚고 원금도 절반 갚아서 살길이 트였구나 했는데 존이 또 무지막지한 빚을 져와서 거리에 나앉게 생겨서 진짜 몸이라도 팔아야 갚을 지경이라 일단 자기라도 살고 보려고.

    그렇게 무작정 시카고로 온 딘은 개브가 샘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걸 이용해 며칠 손님방에서 묶을 순 있었는데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고 어떡하지 하다가 캐스가 생각난 거지. 격주에 오천씩 주면 그걸로 어떻게든 집도 구하고 자립하고 할 테니까. 그래서 눈 딱 감고 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돈을 더 많이 줘서 역시 이건 몸값인가, 하는 딘. 솔직히 말이 정기 고용이지 기본급 따로 무슨 수당 무슨 수당 해서 별도로 제공하면 스폰서나 다름없으니까.

    “다 좋은데 혹시 돈은 현찰로 받을 수 없어요?”

    “현금으로 2,500달러를?”

    “네. 가져가는 건 알아서 할게요. 사정이 있어서요. 돈을 덜 받아도 돼요.”

    사인한 서류를 넘기기 전에 딘이 물어봄. 통장에 찍히면 어떻게든 존이 행방을 찾아내서 올 거고 존이 돈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걸 아는 빚쟁이들도 쫓아올 거니까 너무 복잡했음. 까다로운 지급 방식 때문에 돈이 깎이는 한이 있더라도 현금으로 받아야만 해서 거절당할 각오 단단히 하고 물어본 거였음.

    “그걸 원한다면 준비는 해줄 수 있지만 들고 갈 수 있겠나? 원한다면 수표를 끊어줄 수도 있는데.”

    근데 카스티엘이 너무 쉽게 그러라고 허락해서 딘은 좀 김이 샜음. 캐스는 그거 말고는 고칠 사항 없냐고 물어봤고, 딘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인한 서류뭉치를 건네주고 자리에서 일어남. 서류를 받아든 캐스가 공증을 위해 이 서류를 변호사한테 보낼 거라고 말하는 거 들으면서 딘은 연주할 방 고름. 어차피 몸 섞는 건 침대 있는 방에서 할 테니까 연주실 같은 건 명목상 고르는 거겠지, 했는데 캐스가 생각보다 꼼꼼하게 방의 위치, 구조, 울림 같은 거 신경 써서 딘 당황하기.

    5개쯤 방 빠꾸 먹은 후에 딘이 대충 아무 데나 골라도 된다고 하니까 캐스가 엄격하게 이 집엔 방이 많고 넌 최고의 조건에서 연주할 거라고 그래서 입 다물고 열심히 고름. 거의 이틀 동안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서 피곤해서 쓰러질 거 같은 상태였기 때문에 빨리 끝내면 끝낼수록 이득이었음. 거기다가 딘은 이 부자놈이 어디까지 변덕 부리나 보자 싶은 마음이 좀 생김.

    결국 연주실은 먼지가 쌓이진 않았지만 안 연 지 한참은 되어 보이는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낙점되고 캐스는 하인을 시켜 첼로를 가지고 오게 함.

    “연주 안 시킨다면서요?”

    “리허설이라고 하지 않았나.”

    “뭐야, 그럼 결국 연주하는 거잖아요.”

    “조율만 해도 괜찮다. 적합한 환경이 되도록 수정할 부분을 체크만 할 수 있으면 뭐든지.”

    진지하게 말하는 캐스를 보며 속으로 부자들 속은 당최 모르겠다고 욕한 딘은 집사가 가져온 케이스에서 첼로와 받침대를 꺼내고 대충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활을 켜기 시작함. 딘은 대충 손에 익은 대로 조율하고 정말 아무 노래나 할 요량으로 떴다 떴다 비행기 연주하겠지. 익숙한 미레도레 미미미를 들으며 잠시 멍해지는 캐스. 그런데 또 잘해서 계속 듣게 됨. 역시 천재는 천재라고 생각하면서 이제 됐수? 표정인 딘한테 바꿔야 할 거 없냐고 물어보기.

    “딱히요. 댁이, 아니, 노박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노박 씨는 너무 딱딱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카스티엘이면 된다.”

    “그렇지만 노박 씨가 부르기 편해요. 카스티엘은 너무 복잡하다고요.”

    “현재 노박 씨는 내 어머니를 지칭하는 호칭이라 거부감이 있다.”

    “보통 거긴 아버지가 나오지 않아요? 암튼 카스티엘은 넘 불편한데. 그럼 캐스라고 불러도 돼요?”

    “캐스?”

    자길 캐시라고 부르는 발타자르나 가브리엘은 있었어도 캐스라고 부른 사람은 없었어서 좀 당황한 캐스가 얼결에 되물으니까 딘이 어깨를 으쓱함.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노박 씨 하시고요.”

    “……네가 좋을 대로 해라.”

    “그럼 캐스로 낙점이네요. 그리고 진짜 난 뭐 더 바라는 거 없어요. 세 시간씩 앉혀서 연주시킬 거면 푹신한 일인용 소파가 있었으면 좋겠다 정도? 아무튼, 뭐, 방은 좋네요. 피아노도 좋고. 그럼 이제 가봐도 되는 거죠? 오늘치는 현금으로 마련하지 않았을 테니 다음에 주셔도 되고요.”

    악기를 척척 정리해서 케이스에 넣고 초스피드로 갈 준비를 마친 딘은 캐스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현관을 향해 걷기 시작했음. 깜짝 놀란 캐스는 딘이 가버리기 전에(그리고 길을 잃기 전에)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딘을 불러세움.

    “벌써 돌아갈 생각인가? 계약이 성공적으로 끝난 기념으로 저녁을 대접하려고 했는데.”

    “동생이 기다려서요. 그럼 이만. 아, 현관 이쪽으로 나가는 거 맞죠?”

    “그, 그렇군.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다. 직진만 하면 나올 거다.”

    “그래요? 고마워요. 내일 보자구요.”

    손까지 흔들면서 인사한 딘이 쌩 가버리고 이미 저녁 2인분 준비하게 지시한 캐스는 어버버 하고 있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데 밖으로 덜덜거리면서 새끈한 검은 차가 저택을 빠져나가는 게 보이겠지. 캐스는 어떻게 하면 딘과 좀 친해질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혼자 쓸쓸히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다.

    그다음 날부터 딘은 캐스 집에 꼬박꼬박 출근해서 연주함. 첫날엔 그래도 취향으로 생긴 사람이고 나이 차이도 그렇게 많이 안 나 보여서 어차피 몸을 줘야 할 거면 이런 남자한테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딘이 필살 속옷 입고 왔는데 정말 정직하게 첼로 연주만 듣다가 보내서 왠지 기분 상함 나 지금까지 예쁘단 말만 들었는데 저 자식한텐 내 외모가 안 먹히나? 그럴 리 없는데. 하면서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간 게 고맙겠지. 오늘 하루도 샘에게 떳떳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그래도 첫 봉급 받을 때까지는 몸을 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겠지. 섹스할 가능성이 있냐고 은근히 가브리엘을 떠봐도 희한하게 가브리엘이 카스티엘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자리를 피해서 딘 마음 한켠에는 의구심이 자리 잡고 있기도 했음. 말하는 거 보면 서로 한두 해 안 사이가 아닌데도 언급을 피하니까.

    아무리 부자가 이상하다지만 이건 너무 이상하다고 스스로 수상해하길 2주. 처음으로 묵직한 현금다발을 쥐어본 딘은 괜히 머리 썩이면서 걱정 근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음. 입 다물고 첼로면 몇 시간 켜면 돈을 이만큼씩 받는데 굳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갖고 고민해봤자 자기 손해인데다가, 정말 몸을 섞게 된들 어차피 난 처녀도 아닌데~란 생각이 들기까지 했음. 게다가 섹스하면 그것도 수당 나올 테니까 궁해지면 딘은 은근슬쩍 섹스를 기대하기도 했음.

    왜냐하면, 당연하게도, 캐스가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어김없이 딘에게는 돈이 부족해지는 때가 왔음. 샘 학비도 대고 생활비도 대야 했기 때문임.

    형 따라 시카고로 온 샘은 필연적으로 전학할 수밖에 없었는데, 개브가 소개해 준 명문고는 사립이라 학비가 비쌌고, 시카고 물가가 로렌스보다 높기도 했음. 세금에 월세에 생활비 대고 등록금 모은다고 저축 넣고 애비 때문에 빚 갚느라 한 번도 안 해본 노후 자금 저축도 하고 나면 남는 게 없었음. 돈 많이 버니까 샘한테 그동안 못 해준 것들, 새 책, 새 옷, 유기농 채소와 과일 같은 걸 아낌없이 산 것도 한몫하지만, 샘이 장성해서 변호사 되면 다 돌려받을 거니까 괜찮다면서 후회는 하지 않는 딘.

    딘이 어떻게 생각하든 캐스는 진짜 세 시간 동안 연주만 시킴. 정말 정직하게 도착한 시간부터 세 시간만 딱 연주를 들으면 시간 끌지 않고 바로 돌려보내서 딘은 인생에서 제일 혼란스러울 듯. 어쩌다 시간이 늦어지면 이 핑계로 섹스하려나 싶으면 오래 붙잡아둬서 미안하다고 밥 먹이고 돌려보내기만 하니까 진짜 캐스를 모르겠는 거임. 지금껏 다들 몸이랑 얼굴만 보고 스폰서 해주겠다고 했는데 진짜 자기 음악을 좋아해서 후원해주겠다고 하는 캐스가 별종같은 거지. 딘이 지금 받고 있는 스폰은 아무리 실력이 나빠도 좋은 집안의 애한테만 가니까 딘은 평생 기대한 적도 없었음.

    여차저차 시간이 지나서 대화는 별로 안 했어도 식사는 열 손가락 넘게 같이 했겠다, 적당히 친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딘이 첼로를 등에 메고 연주실 문을 열었는데 캐스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음. 늘 딘이 앉는 소파 바로 맞은편에 앉던 캐스가 그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딘은 당황해서 방 안에 안 들어가고 문턱에 섬.

    “뭐해?”

    “오늘은 네 연주에 반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찮겠나?”

    “나야 덜 심심하고 좋지. 피아노 연주할 줄 알아?”

    “조금.”

    “흐음.”

    당황한 걸 최대한 숨기면서 딘은 일단 자리에 가서 앉음. 케이스에서 첼로를 꺼내고 조율하는데 캐스가 뚜껑을 엄청 노려 보고 열지는 않아서 딘은 진짜 쟤가 왜 저러나 싶었는데 캐스가 처형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한숨을 쉬면서 뚜껑 열겠지. 반주해보고 싶다는 사람 같지 않은 태도에 인상을 찌푸렸다가 딘은 뚜껑 열리는 소리에 좀 당황함. 열린 지 엄청 오래됐는지 삐꺽거리는 소리가 남. 캐스가 손을 풀려고 건반 눌렀을 때 나는 소리로 봐서 아예 방치된 피아노는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뚜껑에서 저런 소리가 나지 싶었지만, 캐스가 손 푼다고 떴다 떴다 비행기 연주해서 딘은 그냥 다 넘어가주기로 했음.

    자리 잡고 반주 줘도 된다고 신호 보내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개쩌는 반주가 들려오는 것임. 놀라서 의자에서 자빠질뻔하는 딘. 그렇지만 오래간만에 엄청난 반주를 들으니까 몸이 막 간지러워서 자기도 모르게 무아지경으로 연주하겠지. 지금 자기가 무슨 곡을 자아내는지도 모르고 몸이, 손이 움직이는 대로 미끄러지듯이. 얼굴이 붉어지고 땀이 흥건히 나도록.

    한참 연주하다가 피아노 반주가 끝나고 나서야 딘은 정신이 든다. 그렇지만 마치 오르가즘이라도 느낀 것처럼 몸이 충만함으로 가득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음. 격정적으로 몸을 움직인 대가겠지. 말 한마디 오가지 않았지만 사람이랑 이렇게 가깝게 느껴본 적이 언제던가, 멍하니 생각하면서 캐스 등만 보는 딘.

    이런 실력이면 자기가 스폰을 할 게 아니라 스폰을 받고 연주회 나가거나 파티에서 공연하거나 음반을 내거나, 뭐 그런 거 다 할 수 있을 텐데 왜 안 하지. 돈이 많아서 그런가?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딘은 캐스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웅크린 자세를 풀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캐스가 말도 안 하고 그냥 나가버리는 거임. 갑자기 넓은 방에 혼자 놀다 버려진 인형처럼 소파에 축 처져 있는 게 너무 춥고 외로워서 안 움직이는 몸을 이끌고 딘은 저택을 빠져나감. 늘 현관까지 따라나오던 캐스가 배웅해주지 않으니 어딘가 찝찝하고 일이 덜 끝난 것 같았지만. 기다린다고 뛰쳐나간 캐스가 돌아올 것 같진 않아서 그대로 집에 간 딘은 몰아치는 탈력감에 제대로 씻지도 않고 침대에 엎어져서 잠이 듬.

    합주하고 뛰쳐나간 일 이후로 둘 사이는 좀 멀어졌음. 캐스는 피아노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사무적인 태도로 딘의 연주만 듣다가 수고했다고 하고 그대로 나가버리기 일쑤였고, 전처럼 현관까지 배웅 안 해줘서 딘은 왠지 모르게 캐스의 그런 태도에 단단히 삐짐.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해서 삐졌다곤 말 못 하지만 사소한 거에 괜히 집착하고 기분 상하는 건 삐진 게 맞았음.

    그러면서도 딘은 내심 캐스가 피아노 쳐주길 기대하는데, 캐스는 한 번도 연주하겠다고 말을 꺼내지 않았음. 그냥 딘이 연주하는 노래를 조용히 듣고만 있으니까 딘은 좀 슬펐음. 그렇지만 곧 캐스가 스스로 안 하면 해줄 때까지 생떼를 쓰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같이 반주해주면 안 되냐고 열심히 꼬시겠지.

    딘의 간곡한 부탁을 더 거절할 수 없었던 캐스가 결국 어떻게 반주해주긴 했는데, 전처럼 막 신들린 것 같은 연주가 아니라 그냥 딱 정석으로 녹음기 틀어놓고 합주하는 거 같아서 딘은 실망함. 그때의 그 전율 다시 느낄 줄 알았는데 아니라서 적당히 한두 곡만 더 연주하고 집 가버리는 딘. 시간이 아직 한참 남았지만 캐스는 딘을 붙잡지 않서, 그날은 딘도 캐스도 불만족스럽게 하루가 끝나버림.

    그렇지만 그날의 불만족스러움 덕분에 눈을 뜬 캐스도 속으로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어 다음 세션에서 먼저 합주하자고 함. 딘은 또 로봇이 반주하는 것 같을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저번처럼 아예 못 맞춰줄 정도는 아니라서 조금 마음이 풀림. 그래도 그때의 한 방을 잊지 못해서 걸핏하면 그때를 찾는 ‘그때’ 집착광공 되는 딘.

    “그때 진짜 끝내줬는데 말이야.”

    합주하면 할수록 딘의 입에 저 말이 달라붙어서는 딘은 어디가 마음에 안 들 때마다 연주 멈추고 찌푸린 얼굴로 캐스한테 투덜거림. 내가 네 안의 음악가를 꺼내고야 말겠다는 딘의 당찬 포부에 픽 웃으면서도 딘이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캐스.

    캐스도 말은 안 하지만 딘과의 합주가 너무 좋았겠지. 자기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이 온 세상을 덮을 만큼 커서 그때처럼 하고 싶은데 뭔가가 자기를 막고 있어서 그때처럼 할 수 없었음. 캐스도 잠자코 있는 건 아니고 그때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죽어라 노력하는데, 어린 시절 나오미의 타박과 훈계 아래에서 죽어라 연습한 버릇이 자꾸만 튀어나와서 감정이 담기지 않고 정확하기만 한 연주가 돼서 본인도 슬픔. 그래도 딘이 자유롭게 연주하는 거에 맞춰 반주하면서 조금씩 습관이 벗겨져 감.

    일 년이 지나고 돌아온 크리스마스 시즌에 노박 가는 연례 자선행사를 열기로 함. 크리스마스쯤 되면 친구라고 부를 만큼 친해져서 딘도 캐스 뜯어먹는 거에 죄책감 좀 덜 느끼고 캐스도 딘 왕창까지는 아니지만 부려먹으며 하하 호호하는 사이가 되었겠지.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단순한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는 지나서 베프를 향해 가는 정도. 그래도 명목상이라지만 돈을 받는 처지니까 딘은 캐스네 파티에서 당연히 연주하게 된 것임.

    아무튼 원래는 본가에서 여는데 올해는 자기 집에서 열게 돼서 일이 귀찮아졌다고 캐스는 딘한테 불평하겠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캐스가 진짜 곱게 자란 버르장머리 없는 부잣집 도련님이긴 도련님이라고 생각하면서 딘은 캐스를 따라 한 번도 간 적 없는 커다란 방에 들어감.

    그곳은 파티 준비로 한창이었음. 샹들리에를 닦고, 임시 단상을 만들고, 방을 둥글게 싸서 춤출 공간을 만든 뷔페 테이블과 손님 테이블, 크리스마스트리, 크리스마스 장식을 든 인부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음.

    “뭔 놈의 집에 연회장도 있어?”

    “내 취향이 아니다.”

    “누가 네 취향이랬냐? 그냥 왜 집에 이런 게 있냐는 거지.”

    “전 집주인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방이 없었으면 내 집에서 파티를 열 일은 없었을 텐데. 진작 없애둘 것을……. 방심하고 있었다.”

    “이걸 방이라고 부르는 네 스케일은 진짜 적응이 안 돼.”

    캐스랑 투닥거리면서도 딘은 착실하게 들고 온 첼로를 들고 단상 위로 가서 연주해봄. 오늘도 완벽한 연주라고 흐뭇하게 딘을 바라보던 캐스는 딘의 연주를 듣느라 잠깐씩 발 멈추고 듣는 인부들을 깨닫고 흐뭇함이 2배가 됨.

    이때까지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혼돈의 카오스가 되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발견한 보물이 드디어 세상에 빛을 발하겠단 생각에 안 먹어도 배가 부른 캐스였음.

    그리고 대망의 파티 당일. 캐스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음. 딘의 연주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캐스는 첼로 독주 무대를 마련해놨는데, 노박 가에서 멋대로 첼로만 있으면 허전하다고 당일에 예고도 없이 악단 불러버린 것임. 캐스는 딘한테 아주 미안하다고 사과했겠지. 독주를 준비했던 딘은 솔직히 당황을 넘어 화도 살짝 나려고 했지만, 캐스네 집에서 불렀다는데 어떡해. 그냥 해야지.

    “괜찮을 거야. 저 사람들도 프로인데 실력이 아주 나쁘진 않겠지.”

    손이 발이 되도록 사과하는 캐스한테 씩 웃어 보이면서 연주를 기대하라며 자신만만하게 연습실에 들어간 딘은 30분 만에 자기 머리를 치고 싶어짐. 그냥저냥 대충 맞기라도 하면 괜찮은데 너무 안 맞아서 리허설 하다가 화병 걸려 죽을 것 같았음. 그렇치만 캐스 가족들 앞에서 캐스 기 세워 주려고 화나는 거 꾹 참고 본방에선 실전이니까 더 잘하겠지~하면서 마음을 다독였음.

    그런데 그 중요한 본방에서도 하나도 안 맞는 거임. 당연함. 딘이 어디서 첼로를 배운 게 아니고 메리한테 애기 때 배운 거 바탕으로 계속 독학했던지라 악보도 잘 못 보고 악보에 적힌 아다지오 알레그레토 이런 거 뭔 뜻인지도 모름. 캐스가 가르쳐 주려고도 했는데 딘이 내가 아는 이탈리아어는 파스타가 끝이라면서 어려워해서 그냥 피아노 포르테 정도만 알고 넘어갈 정도니 지휘자의 사인을 어떻게 읽는지는 더더욱 모름. 지금껏 오케스트라에서 뛰어본 적도 당연히 없고 미세하게라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임.

    제멋대로 자유롭게 삘 가는 대로 편곡도 해가면서 연주하는데 지휘자의 지시에 맞춰 다른 사람이랑 호흡도 맞춰야 하고 잘 읽지도 못하는 악보도 보면서 연주해야 하니까 잔뜩 질려있다가 빵 터짐.

    “너네 다 꺼져. 캐스 불러와!”

    사람들 쳐다보고 옆에 앉은 연주자들도 째려보고 지휘자도 노려봐서 빡쳐 죽으려 하던 딘이 참고 참다가 너무 안 맞아서 연주 멈추고 빽 소리침. 캐스는 그나마 자기 연주에 잘 맞으니까 녹음기 틀어놓은 것처럼 반주해줘도 그 사람들보단 나아서 스폰 받는 입장인 거 망각하고 질러버린 것임. 분위기가 안 그래도 살얼음판이었는데 완전 파국이 되어버림.

    “카스티엘, 언제부터 네가 다시 연주를 시작한 거지?”

    카스티엘이 뭘 할 수 있다고 불러오래? 캐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반응들인데 캐스를 어릴 적부터 일있단 사람들은 싸해짐. 그런 가운데 나오미가 물어보자 캐스는 입 꾹 다물고 딘만 쳐다봄.

    캐스가 공식적으로 연주 안 한 지 최소 6년은 넘은 상태였음. 부잣집에 예술하는 사람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고 나오미가 제일 재능있는 캐스를 연주자로 키웠는데, 캐스가 판에 박힌 연주만 하니까 그런 식으로 하려면 그냥 때려치우라고, 그런 연주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독설해서 캐스 기가 팍 죽고 연주를 그만둬버린 것임. 그런 상태에서 딘이랑 그동안 합주해왔던 거 나오미가 알면 나오미가 또 훈계 시작하거나 예술성을 키우겠다며 자길 달달 볶을 게 분명해서 캐스는 나오미한텐 자기가 다시 피아노 치기 시작했다고 딱히 말 안 하고 있었음.

    “카스티엘, 내가 묻지 않았니?”

    “캐스! 어서 나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태로 캐스는 속으로 치열하게 고민함. 드디어 피아노를 즐길 수 있게 됐는데 나오미가 끼어들면 겨우 찾은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될 게 분명했음. 하지만 그렇다고 자길 애타는 딘을 무시하고 시치미 뚝 떼고 앉아 있기엔 딘이랑 너무 친해진 상태였음. 거기에 딘과 합주할 때 정도라면 나오미도 뭐라고 못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음.

    그렇게 딘이랑 나오미가 계속 캐스를 부르는데 캐스는 어디에도 대답 안 하고 분위기는 점점 싸해지고 그래서 다 수군수군하는데 딘은 연주 제대로 못 하니까 빡쳐 있다가(지금껏 캐스랑 만족할 때까지 연주하는 거에 익숙해져서 중간에 끊기니까 눈에 뵈는 게 없음) 첼로 활로 휘휘 저어서 제대로 화났다는 걸 보여주기 시작함.

    “야, 캐스, 왜 이렇게 안 와? 빨랑 튀어와! 여기 피아노도 근사하게 그랜드로 있다고!”

    그러니까 당연히 근처에 앉아 있던 바이올린이랑 비올라는 활을 피해 피신함. 딘이 그렇게 나대니까 소악단 내에서도 참고 참다가 터질 수밖에 없었음.

    “이 자식 대체 뭐야, 너 직접 후원받는다고 나대냐?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이 바닥에서 다신 일 못 하게 되고 싶어?!”

    지휘자가 격렬히 화를 내기 시작하자 캐스는 결국 일어설 수밖에 없었음. 그래도 자기 집에서 자기 이름 걸고 하는 행사인데 분위기가 여기서 더 엉망이 되면 그게 다 자기한테 마이너스로 돌아오니까. 결국 캐스는 무대 위로 올라가서 피아노 반주자를 밀어내고 자리에 앉았음. 화를 씩씩 내던 지휘자는 고용주가 장단 맞춰주니까 딘한테 더 뭐라고 할 수 없고, 딘이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는 걸 보고 이를 으득 갈곤 지휘봉 들고 연주 시작한다는 신호 보냄.

    긴장되는 순간. 캐스는 덜덜 떨리는 손을 건반 위에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음. 지휘봉이 아래로 내려가고 캐스가 손가락을 움직였는데……

    첫 음부터 삑사리가 나버림.

    지휘자도, 연주자들도, 가족들도, 보는 사람들도 뭐임? 캐스 도련님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하고 속으로 생각할 때 딘이 또 입을 털겠지.

    “니들 땜에 그래! 하여튼 잘하는 게 없어! 다들 내려가세요!”

    아예 팔짱까지 끼고 혐오스럽다는 얼굴을 하는 딘은 버르장머리 없는 애송이 그 자체였음. 나름 경력 있는 지휘자가 참다참다 한마디 하려는데 캐스가 다 내려가라고 하겠지. 열받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래 니들 맘대로 해라 개자식들 욕을 웅얼웅얼 대면서 망하든 말든 다 내 알 바 아니라고 주섬주섬 악기랑 악보 챙겨서 내려가고 무대에 딘과 캐스만 남음.

    “아휴, 속이 다 시원하네. 이제야 뭘 할 수 있겠어!”

    아주 개운하다는 표정으로 콧노래 부르면서 첼로를 다시 조율하는 딘은 캐스를 옴팡 칭찬해줌. 이런 칭찬에는 또 약한 캐스가 좋으면서도 상황에 안 맞는 말 때문에 주변 둘러보면서 목소리를 낮추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딘은 분위기 따위 알 바 아니고 빡치는 놈들 다 내려가서 기분이 좋음.

    “너 스테이크 써느라 손 안 풀렸잖아. 손 풀어. 내가 떴다 떴다 비행기 연주해줄까? 거기에 손 풀래?”

    기분 좋은 딘은 남들이 쳐다보든 말든 하나도 신경 안 써서 캐스 기분 미묘해지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있든 말든 자기밖에 안 보이는 것처럼 얘기하니까 내가 꿈꾸고 있나 싶어지고. 근데 피아노 건반에 닿는 느낌이 묵직해서 꿈은 아닌데 싶고. (꿈에서랑 딘이랑 합주할 때만 피아노 건반이 가볍게 느껴진다는 설정)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꿈인지 생신지도 분간 안 되는 캐스가 조금 멍하게 앉아 있자 딘은 진짜 떴다 떴다 비행기를 연주하기 시작함. 다들 이게 뭐야? 싶은데 캐스는 그들만의 인사이드 조크가 된 동요를 들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웃겠지. 딘이 우리만 생각하면 나도 우리만 생각하는 게 딘에 대한 예의일 거라고 생각한 캐스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말함.

    “딘, 적어도 악보에 있는 걸 연주해라.”

    “난 악보 어차피 잘 볼 줄도 모르는데 악보에 무슨 노래가 있는지 알고 연주하냐? 코드만 겨우 듣고 눈치껏 쳤다고.”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에 손님들은 물론이고 아래로 내려간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어이가 없겠지. 그렇게 다 틀려놓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말하면 좋냐고 속에서 비웃거나 화내는 사람들 일색인데 캐스가 그건 그렇겠다고 해서 두 배로 어이 사라짐. 그렇지만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말든 딘은 조율을 끝내고 기지개를 한번 쭉 켠다.

    “그러면 저기 뭐냐, 왈츠? 클래식이잖아. 쇼팽. 그거 해도 괜찮지?”

    “지금이 딱 춤을 출 시간이긴 하지…….”

    “좋아. 카스티엘 노박 씨, 그러면 피아노 반주를 부탁드려요.”

    아주 과장된 몸짓으로 앉은 자세로 인사를 한 딘을 보고 캐스가 침을 꿀꺽 삼키고 건반에 다시 손을 올림. 그리고 이미 손가락에 익은 악보를 연주하려고 하는데 나오미가 지켜보고 있다는 게 너무 큰 압박으로 다가옴. 좀 긴장이 풀어졌다곤 하지만 자기한테 호되게 뭐라고 한 상대인데다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주한 것도 너무 오랜만이라 어쩔 줄 모르고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기만 하고 시작 못 한 채 한참 앉아만 있는 캐스.

    딘은 얌전히 캐스가 반주해주길 기다리는데, 너무 시작을 안 하니까 답답해져서 으으응 끄으으응 하다가 아주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을 딱 튕김.

    “눈 감고 치면 되겠다!”

    다들 또 저건 무슨 소리지 하고 점점 이젠 어이없기를 넘어서 화가 나려고 하는데 진짜 캐스가 눈을 감고 연주 시작함. 아직 긴장이 다 풀린 건 아니니 당연히 캐스는 더듬더듬 시작함.

    아~ 도련님이자랑 좀 하려고 그랬나보다ㅎ 적당히 박수 치고 전문가 다시 불러와야겠다. 어차피 쟤도 첼로 별로 잘 켜지도 못하는데 허세만 부리니까 둘은 적당히 수준이 맞겠지ㅋㅋ 이러던 사람들은 딘이 제대로 첼로를 켜기 시작하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 점점 무아지경으로 빠진 캐스도 쭉쭉 연주해나가니까 생각 다 고쳐 먹음.

    연주하면서 서로의 세상에 서로밖에 없는 기분이 드는 캐스.. 서로가 서로만 아는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음. 처음에 합주하던 때가 생각이 나겠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유대로 이어져서 저 사람이 있다면 주변에 아무도 없어도 되겠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던 그때.

    왈츠가 끝나고도 캐스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딘이 어깨 딱 짚고 나서야 정신이 듦. 그제야 나오미, 가족, 손님들이 보고 있는데! 하고 부랴부랴 일어났는데 박수갈채가 들리니까 당황해서 딘 팔 꽉 붙잡은 캐스가 이게 무슨 일이냐고 눈으로 물어봤는데 딘은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는 캐스의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도 안 해주고 세상에서 가장 환하게 웃으면서 꽉 껴안고 떨어짐. 캐스는 안 그래도 미친 것처럼 뛰던 심장이 과열로 인해 그 자리에서 완전히 멈춰버리는 줄 알았음.

    “오늘치 일 다 했으니까 근무 시간 끝났지? 나도 스테이크 줘. 배고프다고.”

    캐스의 심장이 멈췄다 다시 뛰기 시작한 걸 모르는 딘은 포옹을 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배를 움켜쥐고 불쌍한 표정을 지음. 너무 아무렇지 않게 그러는 게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내가 너한테 3억 달러를 준다고 해도 진짜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알겠지, 딘. 하는 캐스. 금액이 구체적으로 3억 달러인 이유는 합주하는 꿈 꾸다가 3억 주겠다고 해서임. 당연히 그런 내막을 전혀 모르는 현실 딘이 뭔 소리래? 하면서도 알겠다고 파티에 자기 자리 없으니까 저녁 먹으려고 습관적으로 캐스 끌고 다이닝 룸으로 발을 옮김. 근데 나오미가 어딜 가냐고 불러세워서 앗 마녀다 악 하는 표정으로 슬금슬금 멈춤.

    “아니, 뭐, 저는 제 할 일 다 한 거 같아서 밥 먹으려고요…. 나머지는 악단한테 부탁하세요. 멀쩡히 고용도 했는데 돈 아깝지 않게 써먹으셔야죠.”.

    딘은 캐스한테 흘러가는 말로 나오미가 캐스에게 어떻게 했는지 들어서 바로 지켜주려고 앞에 서서 말함. 그런데 나오미가 대놓고 너한테 말한 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한번 쓱 보고는 캐스만 보고 말하는 거.

    “카스티엘, 할 얘기가 있을 것 같구나.”

    “아, 그러시지 마시고요. 제가 갑자기 단독으로 나서서 그런 거면 저를 갈구세요. 캐스는 잘못 없어요.”

    딘은 당황해서 두 손 들고 자진납세 하고 나와도 나오미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음. 사람을 이렇게 개무시해도 되는 건가? 하고 딘이 울컥해서 이봐요, 하고 장갑 던졌는데 캐스가 재빨리 가로채서 완전 대화하고 싶지 않은 티 팍팍 내면서 이 자리에서 이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원만하게 나중에 말하자고 돌려 말함. 나오미도 지금 당장 하자는 말은 아니었다면서 오늘 연주 잘 들었고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물러감. 나오미와 담판을 짓게 생겼지만, 그래도 일단은 한시름 놓은 캐스는 한숨을 쉬고 손목 잡고 딘 끌고 가던 길 감. 딘은 끌려가면서도 나오미가 멀어지는 뒷모습 보면서 얼음 마녀 어쩌구저쩌구 스테이크 내놔 투덜투덜하느라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지. 어디 가냐고 묻기도 했는데 캐스가 답 안 해줘서 분위기 읽고 입 다물고 가만히 따라가면 좋겠음.

    그렇게 캐스는 둘이 합주하던 방으로 가서 문 잠금. 말없이 따라가던 딘은 갑자기 문에 밀쳐지고 키스 당함. 갑자기 입술이 부딪혀서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싶었지만, 캐스가 키스 너무 잘하고 키스하는 거 생각 안 해본 것도 아니라서 냉큼 올라타는 딘. 그렇게 격정적인 키스를 하다가 퍼뜩 정신이 든 캐스가 떨어짐.

    “미, 미안하다. 감정에 휩쓸려서 그만…….”

    “야 나는, 아니 내 아들내미는 괜찮대. 어, 괜찮아, 응. 아마도?”

    진심으로 사과하는 캐스가 잡은 분위기 다 깨 먹는 딘. 캐스가 그 말 듣고 잠깐 무표정으로 바뀌어서 딘은 쫄면서 속으로 와, 나 이번엔 진짜 좆됐나 봐. 새미, 형 어떡하냐, 걱정하고 있었는데 캐스가 시원하게 웃는 거 보고 눈 두 번 깜빡이고 얘 망가졌어! 생각하기 (바보 딘)

    그 뒤로 뭐, 나오미가 벽 하나 깨졌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연습해서 콩쿠르 나가자고 하겠지. 아직 캐스는 젊으니까. 파티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캐스가 얼마나 피아노 잘 치는지 다 퍼뜨려서 사교계에도 소문 쫙 났겠고. 근데 캐스가 자기는 딘 없으면 그렇게 연주 못 한다고, 자기가 최고가 되려면 딘도 같이 가야 한다고 해서 나오미는 얘가 남자에게 홀려서 정신 못 차리는 줄 알고 딘 쫓아내려고 함.

    하필 그때 샘이 대학 보러 간다고 해서 딘이 캘리포니아 가는 바람에 상황이 진짜 딘이 캐스 떠나가는 것처럼 돼서 나오미가 잘 이용함. 캐스한테는 스폰은 아무리 해줘봤자 스폰일 뿐이라고 기회가 생기자마자 도망가지 않느냐고 하고, 딘한테는 캐스가 너한테 질렸다고 다신 얼굴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네 통장 보면 만 달러 있을 텐데, 그거 먹고 떨어지라고 함. 캐스는 긴가민가하면서 나오미를 믿지 않았지만, 딘은 계좌를 확인해봤고 진짜 만 달러가 들어 있어서 상처받음. 다행히 딘이 정말 떠나가기 전에 전말을 알게 된 캐스가 딘을 붙잡아서 윈체스터 형제는 캐스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일단락된 것 같았으나, 나오미가 심어둔 씨앗은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음.

    돈 때문에 안 그래도 인생이 빡셌던 딘은 이번에도 돈 때문에 캐스와의 관계가 흔들리자 지금의 스폰서 관계를 청산해야겠다고 생각하겠지. 크리스마스 파티 전에도 썸 타고 있었지만, 파티에서 키스한 이후로 대놓고 친분 이상 연애 이하를 하고 있던 관계가 더 진척되려면 돈이 목적으로 보이는 불순한 관계를 청산해야겠다고. 딘이 지금껏 모아둔 돈도 있겠다 더는 네가 날 고용 안 해도 된다고 하니까 캐스가 나오미 말로 심란해 있는 상태에서 충격받고 그건 또 무슨 소리냐고, 우리 관계가 그렇게 쉽냐고 함. 딘은 너야말로 무슨 소리냐고 우리가 돈 주고받는 사람 관계로 있으면 이 관계가 얼마나 가겠느냐고 해서 둘이 대판 싸웠다가 딘은 샘 데리고 결국 캐스 집 박차고 나와서 전에 살던 곳으로 감.

    둘이 냉전인 상태로 샘하고 개브가 중간다리로 겨우 서로 안부 확인하는 사이에 존이 완전히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빚더미에 앉아서 눈에 핏줄 세우고 딘을 찾아옴. 현금으로 모아놨던 거 거의 털릴 뻔하고 도둑질에 실패한 존이 구질구질하게 내 아들 데리고 도망쳤으니 위로금 내놓으라는 것임. 샘을 내놓으면 돈 안 받고 물러가겠지만, 샘을 내놓지 않으면 돈을 줘야 할 거고, 돈마저 안 준다면 유괴로 형사죄를 물을 거라고 협박해오는 존을 처리하고 완전 연을 끊은 딘은 기가 다 빨려서 허망하게 집에 돌아왔음. 그러다 이 집도 캐스한테 받은 돈으로 산 거라고 생각하니 피부 안쪽이 너무 가려워서 첼로만 덜렁 들고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가서 길거리 공연을 시작하는 딘.

    캐스는 딘이 샘 입을 하도 철저하게 막아서 딘이 거리 공연하는 줄은 꿈에도 모르다가 우연히 본 기사에서 딘을 발견하겠지. 처음엔 딘을 많이 닮았네, 싶어서 읽었다가 진짜 딘인 거 알고 연락해보는데 언제 전화 걸어도 전원이 꺼져있다고 해서 속이 다 타들어 가는 것 같겠지. 아무리 샘한테 부탁해서 얘기해보려고 해도 샘이 미안한 표정으로 안 된다고 하고. 매일매일 죽을 것처럼 살다가 보다 못한 개브가 길에서 첼로 연주하는 사람이 있단 소식을 들었다고 찾아가 보래서 한걸음에 달려간 캐스는 그곳에서 딘을 본다.

    자유롭게, 웃고 싶은 대로 웃으면서 티끌 한 점 없는 얼굴로 연주하는 딘을 보고 캐스는 울컥함. 거리에서 그냥 좌판 깔아놓고 연주하는 걸 들으니 딘이 말했던 것들이 무슨 소리인 줄 알 것 같겠지. 캐스는 늘 돈에 휩싸여 살아서 그게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몰랐음. 순진하게도. 처음으로 자기가 돈을 주지 않고 듣는 연주는 훨씬 감동적이었고, 캐스는 백 달러짜리 지폐에 미안하다는 말을 써서 첼로 케이스에 넣고 집으로 돌아옴.

    그날 저녁에 딘이 정말 오랜만에 캐스네 집으로 오겠지. 캐스가 준 백 달러짜리 지폐를 들고. 넌 돈으로밖에 이야기할 줄 모르냐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딘이 지폐 던져주고 가려고 하는 걸 캐스가 그 뜻으로 지폐를 넣은 게 아니라 정말 종이가 그것밖에 없었다고, 그런 뜻으로 비쳤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함. 울 것 같은 얼굴로 하는 사과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고, 그걸 들은 딘은 저도 모르게 캐스를 용서해버렸음. 그런데 아직 사과가 모자르다고 생각했는지 캐스가 합주해보고 싶은 곡이 있다고 주춤주춤 말해서, 딘은 그러자고 함.

    다시 한번 기회를 얻은 캐스는 정말 미안하다는 걸 꾹꾹 담아 건반을 누름. 음악이 말보다 편한 딘이 그걸 못 알아들을 리 없고, 둘은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라>를 합주하면서 그 옛날 느낀 전율을 또 느꼈겠지. 합주가 끝난 후에 그랜드 피아노에 엎어져서 함뜨하고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함.

    그간 혼자 조용히 살면서 가문 파티에만 사무적으로 얼굴 비쳤다가 그나마 친한 발타자르, 메그, 애나랑만 얘기 좀 하고 귀가하던 캐스는 딘이랑 사귀게 된 후로 사교계에서 널리 알려질 듯. 딘이 생각보다 파티 체질이라서 한 번 갔다 하면 뽕을 다 뽑아야만 집에 가자고 해서 캐스도 자연스럽게 오래 있게 된 것임. 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왜 저 조건 좋은 남자가 독신일까 하는데 알 사람은 다 알겠지.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처음 노박가는 고지식한 부유층답게 막내아들이 남자를 좋아하는 걸 매우 고깝게 여겼고 한때 즐기는 나쁜 습관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캐스가 딘이랑 행복하게 살다가 결혼까지 해버린 것임. 안 그래도 딘이랑 지내면서 캐스가 자기 말 안 들어서 핀트가 나가 있던 나오미는 그 일로 완전히 캐스를 집에서 내치고 연을 끊어버림. 그래도 엄마라고 캐스는 좀 많이 슬퍼했지만, 딘이 경험자로서 말하는데 그런 사람이랑은 진작 연 끊는 게 낫다고 위로 아닌 위로해줬을 듯.

    연이 끊겨서 회사에서도 쫓겨난 캐스는 사실 평생 일하지 않아도 되는 계좌 잔고를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할 일이 뚝 사라져버리니까 뭘 해야 할지 엄청 헤맸을 것 같음. 그러니까 딘은 캐스랑 비공식적인 듀오를 결성해서 아는 사람 불러서 집에서 합주 들려주고 그랬겠지. 그러다 점점 (개브의 입김을 받아) 이 파티 저 파티에 초대되면서 유명해지면 좋겠다. 그러다 앨범도 내고 공연도 뛰겠지. 그러다 아는 사람이 아들만 남기고 죽어서 잭 입양해오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 썰에 들어가지 못한 잔설정

    1. 딘 누가 봐도 락덕후인데 연주하는 건 첼로고, 엄청 재능있는데 막귀고, 제대로 음악 배워 본 적 없지만 독학한 천재고, 악기는 메리가 쓰던 거 애지중지하며 씀. 딘이 누구한테 배울 성격은 아니라서 선생 붙여주진 못하지만 최고급 악기 사다 바치는 스폰서 캐스
    2. 딘 외국 작곡가들 들어서 발음할 줄은 아는데 읽지는 못함 특히 쇼팽은 이름 보고 초핀이라고 읽었음 캐스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절대 그렇게 쓰고 쇼팽이라고 읽는 줄 몰랐을 것 Chopin 이게 초핀이지 어캐 쇼팽이냐고!!! (화내는 딘) 들은 거 외워서 연주해와서 작곡가 이름 읽지 않아도 됐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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