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내/캐스딘] Suptober Day 2: Pillowtalk

    2023. 11. 29.

    by. 시두스

    키워드: 애프터섹스

    분량: 공백포함 약 4,100자

    올해 섭토버 주제 중에 예전에 썼던 조각글하고 겹치는 것이 있어 수정해서 올려보아용 :3~

     


     

    아이고, 또 해버렸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딘은 버릇처럼 생각했다. 오르가즘의 여파로 부들부들 떨리는 눈꺼풀을 몇 번이고 깜빡이다가 결국 꾹 닫아버린 그는 한숨을 쉬면서 침대로 파고들었다. 모텔에선 늘 그렇듯 살결에 닿는 침구의 감촉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을뿐더러 그깟 감촉쯤은 어째도 좋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딘이 가만히 누워서 숨을 고르고 있으니 곧 단단한 팔이 허리를 감아 마찬가지로 단단한 가슴에 몸을 기대게 했다. 순식간에 모로 눕게 된 딘은 천사의 다정함에 조금 마음이 따듯해지는 동시에 목 뒤로 닿는 숨결이 일정해서 기분이 묘해졌다.

    천사인 카스티엘은 숨이 흐트러지는 일이 없다는 건 딘도 알았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성적으로 알아도 감정적으로 화가 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을 반으로 접어대서 자신은 몸 전체가 욱신욱신 쑤시는데 자신을 반쯤 죽여놓은 당사자는 멀쩡하고, 하물며 그 당사자가 동정 딱지를 뗀 지 얼마 안 된 초보다? 왕년에 한 끗발 날린 딘 윈체스터의 자존심에 보통 흠이 나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존심에게는 불행하게도, 지금 딘은 자존심을 대신에 화를 낼 힘도 없는 상태였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깟 것에 상처 좀 난다고 해서 세상이 망하지도 않는데 기스 좀 나면 어때. 그냥 대충 살아.

    섹스 때문에 머리가 아주 말랑해진 딘은 모텔 이불보다 수천 배 부드러운 살에 몸을 파묻었다. 그의 몸에 맞춤 제작한 것처럼 딱 들어맞는 품에 파묻히니 과장 조금 보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을 때처럼 혹사당한 근육에서 피로가 사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절로 입에서 으어어, 하고 괴상한 소리가 튀어 나간다. 그러자 낮은 웃음소리가 피부를 타고 흘렀다. 딘은 인상을 찡그렸다. 날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누군데. 발정 난 짐승처럼 달려들어서 사람을 아주 떡 주무르듯 주무른 게 누군데! 덕분에 제 어깨에 있었던 손자국을 한동안 허벅지나 허리, 혹은 골반께에 고스란히 달고 다녀야 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웃을 수가 있어?

    여력이 있었다면 딘은 당장에라도 몸을 돌려 만족스럽게 웃고 있을 카스티엘에게 그렇게 따져 물었을 것이나 아쉽게도 아직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으므로, 그는 팔꿈치로 옆구리를 사정없이 찌르기나 했다. 등허리를 덮은 살결은 메모리폼만큼이나 부드러운데 어째서 팔꿈치에 닿는 부분은 돌처럼 딱딱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번에는 적당히 했다. 네가 원하던 대로 말이지.”

    한참 털실을 가지고 노는 새끼고양이 보듯 딘을 내버려 두던 카스티엘이 슬쩍 딘의 팔꿈치를 잡아 누르면서 말했다. 팔꿈치를 잡힌 딘은 카스티엘이 그의 몸을 멋대로 움직이는 것에 잠깐 정신을 빼앗겼다가, 천사의 말을 뒤늦게 이해하고 참아왔던 울분을 터뜨렸다.

    “적당히? 적당히이?! 야, 두 번 적당히 했다간 사람 죽겠다!”

    “도중에 더 해달라고 졸랐던 건 네가 아니었나.”

    “섹스할 때 하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딨어, 세상에!”

    “그 순간엔 네 영혼도 동의하는 듯이 무척 아름답게 반짝였다. 그때의 너만큼 진심을 담아 말한 인간은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몇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

    딘이 왁왁 화를 내는 것에 제법 괜찮게 대처할 줄 알게 된 카스티엘은 화를 내느라 반쯤 돌아온 몸을 완전히 돌리고 입으로 입을 막아버렸다. 마침 벌려있는 입 안으로 혀를 넣고 입천장을 훑자 딘은 몸을 흠칫 떨고는 잠잠해졌다. 카스티엘은 키스를 이어나가면서 조심스럽게 목덜미를 잡고 딘을 완전히 눕혔다. 그는 한참 혀를 엉클다가 이젠 왜 화를 냈는지 까먹었겠지, 싶을 즘에 입을 뗐다. 간신히 돌린 호흡이 다시 엉망이 된 딘의 동공이 살짝 풀려 있었다.

    “좋았나?”

    카스티엘은 마치 바깥 날씨를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 이성이 죄 날아간 딘은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이성은 고작 키스로 내일 샘에게 당할 수치―그는 딘이 어기적거리며 걸을 때마다 그간 섹스와 관련하여 받았던 놀림을 갚아줄 작정으로 제 형을 놀려먹었다―를 무마할 생각이냐며 성을 냈으나 본능은 이성의 말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 없었다. 좋아, 너무 좋아, 진짜 좋아, 끝내줘, 또 하자 따위의 말이 목구멍 근처에서 막무가내로 넘실거렸다. 그 말들을 하지 않은 것은 실낱같이 남은 이성 덕분이 아니라 그저 말할 호흡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이성과 뇌의 연결이 끊어진 딘은 헉헉 밭은 숨을 내쉬면서 멍하니 카스티엘을 올려다보았다. 방금까지 맞닿고 있던 분홍색 입술이 하도 빨아대서 빨갛게 부풀어 오르고 그 위로 아주아주 파란 눈동자가 선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천사라서 그런 건지 제 눈에 콩깍지가 쓰여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딘은 그렇게 예쁜 눈동자를 태어나서 처음 봤다. 특히 티끌만큼의 잘못도 하지 않은 티 없이 맑은 순진무구한 눈이 망막 아래에서 스멀거리는 은총으로 번뜩이는 광경은 말로 형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얌전하고 착한 얼굴로 짐승 같은 섹스를 한다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거기에 더해 이런 샌님에게 여전히 뒤가 제대로 다물리지 않을 정도로 큰 게 달려 있다고도 믿기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카스티엘은 정말 크고 정말 잘했다. 어디에서 섹스를 잘하는 법이라도 배워오는 건지 나날이 테크닉이 느는데, 오늘은 그동안 착실히 쌓여온 테크닉의 절정을 보여준 것 같았다. 길에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들어와서 보고 배우라고 하고 싶을 만큼 좋았다. 방에 들어와서 옷을 벗기는 순간부터 사정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데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 도중에 완벽한 손이나 다른 무언가―아마도 은총이겠지만―가 뿌리 부분을 막지 않았다면 딘은 저녁 내내 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십 대 청소년처럼 몇 번이고 가버렸을 터였다.

    진심으로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다음 날 골골거리느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테니까. 서글프게도 시간의 역풍을 제대로 맞은 딘은 이제 하룻밤 사이에 홍콩행 비행기를 두 번 이상 탈만 한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홍콩행 비행기를 열 번이나 운행하고도 멀쩡한 어느 천사와는 다르게.

    “진짜 너는 눈 덕분에 산 줄 알아라. 섹스도 섹스지만 얼굴 때문에 내가 봐주는 거라고.”

    갑자기 분한 마음이 치민 딘은 저도 모르게 불쑥 내뱉었다. 내내 딘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카스티엘은 그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고개를 기울였다.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발견한 강아지처럼 귀여운 동작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부러 툴툴거리면서 대답하자 카스티엘의 얼굴이 매우 심각해진다. 머릿속을 읽으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딘의 부탁으로 그러지 않기로 한 천사는 성실하게 머리를 굴려 정답을 찾아 헤맸다. 카스티엘에게 괜한 고생을 시킨 딘은 기분이 나아졌다. 저 위대하고 강대한 천사가 그의 말 한마디에 절절매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즐거웠다. 애초에―의도하지는 않았지만―먼저 감정을 상하게 했으니 어떻게 보면 그의 업보기도 했고.

    “……배가 고픈가?”

    한참을 고민한 끝에 카스티엘이 내놓은 답변은 딘의 예상을 멋지게 벗어나 있었다. 딘은 속으로 삼키던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 내어 킥킥거렸다. 카스티엘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데도 웃으니 보기 좋다는 얼굴을 하고 그의 인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니거든! 누굴 돼지로 알아. 그렇지만 듣고 보니 배가 고픈 것도 같고…….”

    “그렇다면 무언가를 사 오겠다. 잠시만 기다려라.”

    “그동안 난 여기에 바보처럼 빨가벗고 혼자 누워있으라고? 됐네요. 그리고 애초에 뭐 먹을지 생각한 거도 아니었다고.”

    “그렇군.”

    “그래.”

    “그러면 무슨 생각을 했지?”

    “알고 싶어?”

    카스티엘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딘은―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겠지만―그가 좋아해 마지않는 얼굴을 천진하게 보다가 씨익 웃었다.

    “비밀.”

    장난스러운 대답에 모양새 좋은 눈썹이 쓱 위로 올라간다. 그 표정이 우스워 딘이 쿡쿡거리자 천사의 얼굴은 조금 더 진지해졌다. 그 곤란한 표정에 딘은 결국 소리 높여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한동안 어깨를 들썩이다가 한풀 식은 열기 사이로 문득 파고든 한기에 몸을 움칠 떨었다. 그는 굳이 침대 아래로 떨어진 이불을 줍는 수고를 하는 대신, 눈앞에 있는 인간형 난로에 달라붙었다.

    “네가 말하고 싶지 않다면 그런 것이겠지.”

    반사적으로 딘의 허리를 팔로 감싼 카스티엘은 선뜻 온기를 나눠주었다. 딘은 피부는 물론이고 마음속까지 간질이는 따듯함에 코로 흐음, 소리를 냈다. 목과 어깨가 맞닿는 지점에 고개를 파묻은 카스티엘이 살갗을 지근거리는 감각에 작게 몸서리치면서도 그는 제 팔을 뻗어 그의 몸을 마주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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