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내/캐스딘] Lazarus Rising 3 (完)

    2023. 11. 29.

    by. 시두스

     

     


     

    “의식 제대로 치르신 거 맞아요?”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 딘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하얀 연기가 나오지 않게 된 지 30분 정도 흘렀다. 긴장과 기대감, 약간의 두려움을 떠안고 내내 기다렸으나 너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실망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동안 일어난 일이라곤 그냥 지나간다던 폭풍 때문인지 비바람이 점점 거세어진 것이 전부였다.

    김이 다 새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한풀 꺾이는 느낌이 들어, 딘은 괜히 바비를 쿡 찔러보았다. 대답할 생각해 볼 가치도 없다는 듯 바비가 말없이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알았어요, 예민하시긴.”

    괜히 무안해진 딘이 두 팔을 벌려 항복 포즈를 취해도 바비의 표정이 나아지질 않았다. 노인의 두 눈에서 많은 감정이 읽혔다. 물론, 바비가 의식을 잘못 치렀을 리 없다. 의식이 실패했다면 출처에서부터 틀려먹었을 것이다. 참나.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 딘은 주먹으로 머리를 콩콩 때려볼까 하다가 바비가 더 미친놈 보듯 할 것이 분명해 그만두었다. 하기야 썩 보기 좋은 몰골도 아닐 거다.

    “설마 천사라는 놈이 우리가 잔뜩 쳐놓은 덫하고 부적 때문에 못 들어오고 있는 건 아니겠죠?”

    “……글쎄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게 아니면 우리가 부르는 걸 무시할 정도로 강력하단 뜻이겠지.”

    “어느 쪽이든 위험할 것 같은데요.”

    “그래서 내가 나쁜 생각이라고 하질 않던?”

    “뭐, 이미 저지른 걸 어쩌겠어요.”

    딘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바비는 언제나처럼 허, 하고 한숨을 뱉어냈다.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딘이 손이 심심해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자마자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둘은 시선을 한 번 마주치고는 각자 무기를 들고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세찬 바람에 슬레이트 지붕이 날아갈 것처럼 펄떡였다. 딘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건 천사였다. 천사가 그들의 부름에 답해 오고 있었다.

    그의 생각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일시에 수만 개의 바늘로 찔리는 것처럼 어깨가 따가웠다. 아니, 차라리 뜨겁게 달군 쇠로 지져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저 급격히 피부가 달아오르는 느낌만이 있었다.

    “희망 사항이긴 하지만, 그냥 바람일지도 몰라요.”

    그 말에 바비가 한 마디 더 얹기도 전에 바로 머리 위의 전등이 터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헛간을 밝히던 모든 전등이 차례차례 깨져나갔다. 아무래도 천사는 현실 도피적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가 이 카스티엘이란 놈이 개자식이라고 말했던가요?”

    “그래!”

    “말을 바꿀래요. 이놈은 개자식이 아니라 개새끼예요!”

    바람이 점점 더 세졌다. 지붕이 아니라 이 낡은 헛간 그 자체가 바람에 떠밀려갈 것 같았다. 소리를 질러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바람이 흉포하게 불고 있었다. 바람에 떠밀려 건물이 무너지겠다고 생각한 순간, 바람이 뚝 멎었다. 그리곤 단단히 걸어놓은 빗장이 부서지면서 문이 앞으로 쿵 쓰러졌다. 문 앞의 전등이 마지막으로 터지면서 드라마틱하게 헛간 안으로 들어선 인물을 비췄다.

    누가 손으로 들쑤셔 놓은 듯한 어두운 까치집 머리와 잔뜩 헤지고 두 치수는 커 보이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파란색 넥타이, 그 아래로 튀어나온 검은 정장 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딘과 바비는 그 정체불명의 인물이 헛간에 들어선 순간 총을 쐈다. 하나는 실탄, 하나는 암염으로 채운 총알이 몸에 푹푹 박혔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고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분명히 심장과 종강이, 배에 총알이 박힌 것을 봤는데도 멀쩡한 모습에 사냥꾼들은 다시 한번 시선을 마주했다.

    바비가 남자의 뒤로 다가가는 동안 딘은 루비의 칼을 손에 쥐었다. 바비가 제 뒤로 가든 말든 남자는 시선조차 두지 않고 딘을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육식동물이 먹잇감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 같기도, 상처 입은 동물에 다가가는 것 같기도 한 걸음걸이로, 남자는 딘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야 멈춰 섰다. 하룻밤 상대를 찾는 바에서도 이렇게 가까이 오진 않겠다. 딘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넌 누구지?”

    “난 너를 단단히 붙잡고 지옥에서 끌어올린 자다.”

    남자의 눈은 아주 새파랬다. 고양잇과 동물처럼 어둠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눈동자가 파란빛으로 형형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무엇이든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은 눈이 손바닥 자국이 있는 어깨를 쓱 훑고 지나갔다. 딘은 두려움이나 목을 잘라내고 싶은 욕구보다도 이유 모를 안전, 안심, 안도 따위를 먼저 느꼈다. 당황스러웠다. 방금까지만 해도 죽일 기세가 등등했는데 당사자가 말 그대로 코앞에 나타난 순간 살심이 눈 녹듯 사라졌다. 딘 윈체스터는 적이 고작 총알 몇 방에 죽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할 남자가 아닌데도.

    “그것참 고맙네!”

    딘은 당황하면 손부터 나가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악마를 죽이는 칼을 잡긴 했어도 몸을 지키거나 바비가 수를 쓸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그런 것이지, 정말 남자를 공격할 의도는 없었다. 총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근접전으로 싸우는 건 자살 기도나 다름없었다. 이 모든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음에도, 딘은 무턱대고 남자의 몸에 칼부터 박아넣었다.

    놀랍게도—혹은 놀랍지 않게도—남자에게선 악마들이 죽을 때 으레 뿜어져 나오는 빛도, 살갗이 타는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오히려 칼을 휘두른 딘이 더 놀랐고 더 아팠다. 두꺼운 고기를 쑤시는 것처럼 손목이 징 울렸다. 딘은 아연하게 트렌치코트 위로 삐쭉 튀어나온 칼을 한참 바라보았다. 남자는 귀엽다는 듯한 표정으로 칼을 뽑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딘은 자기도 모르게 칼을 박아넣은 자신에게 당황해야 하는지, 아니면 모든 악한 존재를 멸하는 칼이 몸에 박혔는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제 손으로 빼낸 남자에게 당황해야 하는지 정할 수 없었다. 그는 조언을 구하듯 남자의 뒤에서 대기하던 바비에게 시선을 던졌다. 바비는 그 시선을 받고 남자에게 놋쇠 부지깽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남자는, 천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지깽이를 붙잡았다. 암만 예상하였더라도 바비가 온 힘을 다해 내리친 부지깽이를 잡은 순간 손목이 부러지거나 상당한 고통을 호소해야 하는데, 그는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한 기색이었다.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다. 남자는 딘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뒤를 돌아 바비를 무언가 수작을 부렸다. 어깨너머로 보기엔 손가락 두 개를 이마에 댔을 뿐인데, 바비는 반항도 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쇠 부지깽이가 바닥을 치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딘은 바닥에 누운 바비를 멍하게 바라보다가 천사를 보았다. 마법을 쓸 줄 아는 건가? 천사니까 당연한가? 머리가 복잡했다. 그러나 천사, 카스티엘은 그런 딘의 속내나 바닥에 널브러진 바비는 어째도 좋다는 듯, 오로지 딘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우린 대화가 필요하다, 딘.”

    그리곤 딘을 따라 바비를 한 번 흘끔 내려다보고 한마디 덧붙였다.

    “단둘이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중지를 치켜들고 꺼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딘은 대화를 거절할 처지가 아니었다. 딘도 천사도 그것을 알았다. 딘은 쓰러진 바비를 내버려 두고 갈 수 없었다. 도망가더라도 천사는 그를 간단히 도로 붙잡아올 것이다. 게다가 딘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카스티엘은 전혀 관심 없는 딘을 억지로 붙들어놓고 그 머릿속을 휘저어놓는 목소리를 사용해서 일방향 대화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지 않은 것은 순전히 그가 딘을 봐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예의 차리기는.”

    코앞에 딱 붙어있으니 딘이 꿍얼거린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천사는 반응이 없다. 단지 죽 딘을 바라볼 따름이다. 딘은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웠다. 인간의 탈을 썼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명백히 인간이 아니었다. 직접 얼굴을―천사의 맨얼굴을 보면 죽는다지만, 어쨌든, 지금은 면대면 중이니까―맞대고 있으면 점점 더 천사의 비인간성이 도드라졌다. 그러고 보니 천사는 저를 지켜보는 내내 단 한 번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뱀파이어도 늑대인간도 셰이프시프터도, 심지어는 악마조차도 꺼먼 눈을 자랑한다고 눈을 깜빡이는데 말이다.

    아주 납량특집이 따로 없구만. 속으로 생각한 딘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선 천사를 지나쳐 바비에게로 발을 뗐다. 흘끔흘끔 곁눈질할 때마다 카스티엘은 그가 움직이는 대로 눈동자만 스륵스륵 굴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빤히 바라봐진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애초에 플러팅할 때 잠깐, 원나잇할 때 잠깐, 그 짧은 시간을 빼고는 저에게 관심을 줄 만한 사람도 없었다. 존은 들어와 있는 시간보다 나가 있는 시간이 더 길었고, 바비나 샘은 딘이 얼마나 시선을 불편해하는지 알기 때문에 적정선을 지켜줬다. 그러므로 카스티엘의 시선은 그가 천사라는 사실을 빼고서도 불편했다. 천사라는 사실이 더해지면 정말, 정말 불편했다.

    “좀 딴 데 볼 수 없어?”

    “다른 곳?”

    바비를 살펴보려고 쓰러진 몸 옆에 쪼그리고 앉은 딘은 목과 등 뒤로 푹푹 파고드는 시선을 견디다 못해 결국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그가 뒤돌아보자, 카스티엘이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하곤 답이 없었다. 한 톨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것 같으니 이해를 못 하진 않았을 텐데. 딘은 천사가 자기를 기만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데를 보라는 말을 정말로 알아듣지 못한 건지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딘은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초자연적인 놈들에겐 원래도 무의미한 짓이었지만, 이 천사에게는 더더군다나 그럴 것 같았다. 딘은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그래. 뒤를 돌거나 눈을 감거나. 아무튼, 날 좀 그만 보라고.”

    “내 시야는 물리적이지 않다. 안구가 직접 인식하는 범위를 제한한다고 해서 너를 안 보게 되지 않는다.”

    “안구, 인식……. 지금 날 놀리는 거야, 뭐야?

    “놀리다니? 내가 너에게 악의적인 행동과 언사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 웃기고 있네. 하― 이봐, 뭔 꿍꿍인진 모르겠는데, 날 보는 것 말곤 할 짓이 없어?”

    “물론 있다. 너희가 나를 부르기도 했지만, 나는 너와 대화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내 목적을 충족하면 나는 이곳을 떠날 거다. 그러니 딘―”

    “아! 거, 되게 답답하네. 그냥 하라면 해!”

    “내게 그럴 이유는 없다.”

    진짜 이 개새끼를 어떻게 확 해버릴 수도 없고. 딘은 목덜미를 잡았다. 원래도 밉상이었는데 점점 더 밉상이 되고 있다. 분명 얼굴을 마주한 직후까지만 해도 무언가 부드러운 것을 느낀 것도 같은데, 말을 몇 번 섞어보니 이건 뭐……. 답이 없다, 답이.

    “말을 찰떡같이 해도 개떡같이 받아먹으니 네가 알아듣기 쉽게 해주지. 거래 하나 해. 날 안 보는 척하면서 잠깐 딴짓하고 있으면 나중에 그 원하는 대화 실컷 해줄게.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다른데 보고 있어. 알겠어?”

    딘은 험악한 얼굴로 이를 으득으득 갈며, 먼 옛날 어린 샘이 ‘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 시절의 인내심을 끌어모았다. 거부하면 어떻게 해서든 죽인다는 뜻을 팍팍 담은 말에 가시가 잔뜩 박혀 있었다.

    “……알겠다.”

    한참 후에야 카스티엘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천사는 안 그래도 잔뜩 찌푸려진 얼굴을 한층 더 볼썽사납게 구겼다. 전혀 알겠다는 표정이 아니었지만, 내키지 않아 하든 말든 딘이 알 바 아니었다.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은 딘은 잔뜩 찡그린 미간을 풀고 바비를 다시 살폈다. 잠든 것처럼 평온한 얼굴이다. 바비가 이런 표정을 지은 적이 있던가. 그는 애꿎은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콧구멍 아래로 손가락을 들이밀고 다른 손으로 목을 짚었다. 호흡과 맥박이 느껴졌다. 아직은 살아있다, 아직까진.

    “네 친구는 살아있다.”

    눈치가 더럽게 없는 천사가 불쑥 끼어들었다. 누가 들으면 바비가 쓰러진 것과는 털끝만큼도 관련 없는 사람, 아니 천사인 줄 알겠다. 딘은 오만 욕을 삼키면서 뒤를 돌았다. 천사는 무표정으로 바비의 저널을 뒤적이고 있었다. 자신을 보지 말라는 말을 제대로 지킨 건 좋은데, 아무렇지 않게 바비의 물건을 만지고 있으니 어쩐지 부아가 났다.

    “너, 누구야.”

    “카스티엘이다.”

    “그건 나도 알아. 정체가 뭐냐고.”

    “난 주님의 천사다.”

    진중한 목소리가 고했다. 제가 주님의, 하늘 높이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신의 천사라고. 지옥에서 사람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건 천사뿐이라고 한 바비의 말과 일치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까마득한 옛날에 들었던 메리의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평생 그를 지켜봐 주는 천사 따위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를 끌어올린 천사 또한 있어선 안 되는 존재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그딴 건 없으니까.”

    “이게 네 문제다, 딘. 너에겐 믿음이 없어.”

    없으면 어떡할 건데. 뭘 보여주기라도 하게? 딘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허, 코웃음을 쳤다. 혹시 보여준다고 해도 뭘 어떻게 보여준단 말인가. 천사라는 말 치곤 하늘하늘한 흰 옷도, 날개도, 머리 위의 고리도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악마들도 뿔과 날카로운 꼬리가 달리진 않았지. 그는 머리 한구석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눈앞의 존재를 노려보았다. 그것은 아주 잠깐 고심하는 듯하다가 허리를 곧추세웠다. 딘이 똑바로 선 천사와 제 키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천둥소리가 들렸다. 뒤를 이어 번개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쳤다. 어두운 헛간 안이 잠시 밝아진 그 찰나에, 딘은 온갖 문양으로 어지러운 나무판자 벽에 드리운 날개의 그림자를 보았다. 날카롭게 벼려진 깃털 하나하나가 빳빳하게 서 있었다.

    딘은 똑바로 마주쳐오는 파랗고 파란 눈동자로부터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퍼런 안광을 내뿜는 눈동자는 도저히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도망치거나 항복하는 수밖에 없다는 직감이 들었다. 저것과 싸우는 일만큼은 피해야 한다. 어떻게 해도 승산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은 지옥에서 나온 이후 최고로 조용했다. 그가 모르는 무언가를 무의식이 알고 있었다. 본능이 딘에게 이 자는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다고, 기댈 수 있다고 알렸다. 그것은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천사를 환영했다.

    한동안 우르릉거리던 소리가 가라앉았다. 잠깐의 고요 속에서 딘은 본능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천사가 어떠한 능력으로 거짓된 안정을 불러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볼 안쪽 살을 씹으면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집중했다. 구급차에 실려 간 파멜라 반즈와 엉망이 된 가게, 그녀의 집, 모텔.

    “퍽이나 천사시네. 가엾은 여자의 눈을 태웠으면서.”

    어금니를 질끈 깨문 딘이 말했다. 살 타는 냄새가 아직도 생생했다. 딘의 추궁에 천사는 놀랍게도 참회하는 기색을 띠었다. 참회하는 괴물은 없다. 하지만 참회하는 척하는 괴물은 있을 수 있지. 그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온 천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천사는 두 팔을 어떻게 둬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휘적거렸다.

    “난 내 실체를 엿보지 말라고 경고했다. 너도 파멜라 반즈를 통해 내 경고를 들었을 테다. 내 본 모습은 인간이 감당하기엔 종종… 압도적이며 내 진짜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이미 알겠지만.”

    “주유소랑 모텔 말이야? 그게 말하는 거였다고?”

    고작해야 서너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천사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우면서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였다. 딘은 한 발자국 뒤로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어차피 그가 뒤로 물러나면 천사는 앞으로 나올 것이다. 대신, 그는 최선을 다해 빈정거렸다.

    “이봐, 다음부턴 목소릴 좀 낮추지 그래.”

    “그건 내 실수였다. 어떤 인간들, 특별한 인간들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난 너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오산이었지.”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천사에게 할 말이라곤 그거 안 됐네, 정도였다. 사실은 조금도 안타깝지 않았기 때문에―괴물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안도만 느꼈을 뿐이다―딘은 다음으로 신경 쓰이던 주제로 넘어갔다.

    “지금 그 모습은 대체 뭐야? 천국의 세무사인가?”

    “이 모습 말인가? 이건 일종의 그릇이다. 천사가 인간 앞에 나타나려면 그릇이 필요하지. 우리는―”

    “인간에겐 치명적이니까. 그래, 알겠다고. 그런데, 네 말은 지금 네가 웬 불쌍한 놈에 쓰여 있단 거야?”

    “그는 독실한 사람이다. 기도로 이 일을 자청했어. 천사는 허락 없이는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딘. 악마와 다르게 말이지.”

    언뜻 절박해 보이는 몸짓과 어조였다. 딘의 승인이 중요하기라도 하듯이.

    그렇지만 이미 웬 죄 없는 남자는 몸을 갈취당했다.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를 빛을 받아 반짝이는 파란색 눈동자는 천사가 아니라 몸 주인의 것이었다.

    아무리 선을 그어도 딘이 보기엔 똑같았다. 그는 지옥에서 고문의 황제에게 직접 고문을 당하고 또 배웠다. 허락은 꼭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예스라는 허락의 말은 생각보다 금방 튀어나온다. 적절한 곳에 적절한 힘을 가하기만 하면.

    “난 네 말 못 믿어. 그러니 순순히 진짜 정체를 밝혀.”

    “이미 말하지 않았나. 너도 나에 대해서 알 텐데.”

    “그래, 천사 너부렁이라고.”

    천사는, 카스티엘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카스티엘은 천사다. 바비가 말했고, 파멜라가 말했고, 심지어 그 부르기 번거로운 이름의 ‘엘’마저 그 사실을 입증했다. 카스티엘은 천사고, 그를 지옥에서 끄집어 올린 존재다. 어쭙잖은 인간인 그의 본능도 동의하고 있었다. 다만, 언제부터 딘 윈체스터에게 천사의 구원을 받아 마땅한 존재였는가? 그의 냉철한 이성은 믿을 수 없는, 그럴 리 없는 일을 붙잡고 늘어지며 버텼다.

    왜 고귀한 천사가 샘이나 바비 같은 더 훌륭한 인간을 두고 널 구하겠어? 이게 무슨 함정이 아니라면야.

    알라스테어의 목소리를 닮은 그것은 딘을 현실로 끌어올리려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천사가 왜 날 구하지?”

    딘은 그 의견을 입으로 옮겼다. 합당한 의문이었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천국이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딘 윈체스터를 고른 것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인지 이해할 것이다. 윈체스터 안에서 골라야만 했다면 존도 있고 메리도 있다. 둘을 제치고 딘을 골랐다고? 그 어떤 블랙코미디보다 깊고 음울하며 재미없는 농담이었다.

    “좋은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딘.”

    질문을 받은 천사는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눈썹이 모이고 동공에 이채가 서린다. 네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한 발자국씩 가까워지는 천사는 역시 부담스러웠다. 이미 지옥의 밑바닥을 본 그에게 천국의 진노(震怒)가 두렵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딘은 가만히 서서 시선을 맞받았다.

    “나한텐 아니야.”

    “무엇이 문제지?”

    퍼즐 조각이 모자라서 맞출 수 없는 퍼즐을 보는 눈으로, 천사는 딘을 응시했다.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딘의 얼굴을 헤매던 그것은 순식간에 표정을 풀었다. 조금 커진 눈동자와 내려간 입매에서 딘은 동정을 읽었다. 퍼즐을 완성한 천사의 목소리는 깨달음과 연민을 담고 있었다.

    “넌 스스로가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로군.”

    “왜 날 구한 거냐고?”

    잘 짜인 극본 속의 캐릭터처럼 그가 말했다. 혹은, 그 자신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마치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방관자처럼 말한 기억이 없는 문장이 입 밖을 나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신께서 명령하셨다. 천국에는 네게 맡길 임무가 있어.”

    두 마디 문장에 시한부 인생을 선고하는 의사, 혹은 사형을 선고하는 판사 같은 무거움이 있었다. 그럴 의도는 없겠지만, 어쩌면 바로 그 의도를 위해 잘 벼렸을지도 모르는 문장들은 이미 밖으로 나와 존재했다. 그것들의 무게는 딘에게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견고하게 달라붙었다. 헛소리하지 말라거나 그런 장담은 재미없다고 해봤자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딘은 똑바로 자신을 향하는 눈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아야 한다는 본능 이상의 무언가가 그를 못박았다. 카스티엘은 정말 천사인 게 분명했다. 딘은 문득 생각한다. 이 다 허물어져 가는 더럽고 낡은 헛간에 인간을 구원한 천사와 구원받은 인간 단둘이 서 있는 것이 단순한 우연일 리도 없다; 집요하고 광기 넘치는 계획에 그는 벌써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흉물스러운 손바닥 자국이 어깨에서 욱신거렸다.

    목적을 달성한 눈치였지만, 천사는 할 말 다 하면 가겠단 말과는 달리 떠나지 않았다. 속으로 유치하다고 생각하긴 했어도 눈을 피하면 지는 거라는 괜한 오기가 생겨 딘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모든 감정이 한 차례 식은 후에 보니 상대가 썩 보기 나쁘지 않은 얼굴이었던 것도 조금 거들었다. 아마도?

    여하튼 그런 연유로 한참이나 두 존재는 서로를 탐색했다. 카스티엘이 딘이라는, 자신이 구한 인간에 대해 자세히 알기 위해 딘을 샅샅이 훑었다면 딘은 도중부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지나친 고민과 걱정이 뇌를 과부하 상태에 빠뜨렸기 때문이었다.

    카스티엘이 가까이 다가온 덕분에 딘은 천사의 짙은 머리 색과 눈썹, 턱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평범한 사회인의 찌든 얼굴을 보면서 그는 평범한 상황에서 만났다면 얼굴과 몸을 샅샅이 훑어뒀다가 깊은 밤에 몰래 꺼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난 이만 가보겠다. 우리는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무렵에 뜬금없이 나온 말이었다. 수면 위로 끌어 올려진 것처럼 눈을 깜빡인 천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뒤를 돌았다. 딘은 몽롱해졌던 정신을 붙잡으며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잠깐, 잠깐! 바비 아저씨는 돌려놓고 가야지!”

    “그는 곧 깨어날 거다. 그럼 이만.”

    “야!”

    딘은 이미 저만치 가 있는 카스티엘을 따라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문턱을 넘기 전에 두 치수는 커 보이는 코트 자락을 잡았다고 생각했으나 헛간을 벗어나자마자 천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황망하게 어두컴컴한 숲속과 저 멀리 보이는 고속도로를 살폈다.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풍경 어디에도 베이지색 코트와 창백한 피부는 보이지 않았다.

    “카스티엘! 카스티엘! 이 개자식!”

    허공을 향해 기분이 풀릴 때까지 욕설을 쏟아낸 딘은 한숨을 쉬면서 빠른 걸음으로 헛간 안을 향했다. 꼭 최면에라도 걸려있었던 것처럼 이 모든 게 불투명하고 비현실적이었다. 천사라는 자식이 혹시 정신을 조종한 것이 아닌지, 그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서둘러 바비의 곁으로 돌아온 딘은 그의 코 아래로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안정적으로 들이마시고 뱉는 숨결이 느껴졌다. 조금 안심이 된 그는 샘에게 전화할 작정으로 핸드폰을 열었다. 통화권 이탈이라는 글자가 화면에 떠다녔다. 딘은 바닥에 아주 엉덩이를 대고 앉으며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바비는 그로부터 10분 후쯤에 정신을 차렸다. 딘은 이게 네가 말하는 곧이냐고 이를 갈면서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는 바비를 부축하며 일어섰다. 노인은 괜찮다고 했지만, 딘의 확고한 의지를 꺾진 못했다.

    트럭으로 가면서 그들은 천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바비는 쓰러진 직후부터 일어날 때까지 아무것도 듣고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오히려 지금껏 이렇게 꿈 없이 평온하게 잔 적이 없었다며 퍽 만족한 눈치였다. 갑자기 기절 당한 것을 눈감아 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천사는 어떻게 되었냐?”

    “몰라요. 생각했던 것만큼 개자식이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넌 멀쩡해 보이는구나.”

    “제 얘기를 들으면 생각이 달라지실걸요.”

    “그래도 널 지옥에서 꺼내줬잖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딘, 아무리 네가 생떼를 써도 천사가 널 구했다는 사실에 값어치가 떨어지진 않아.”

    “그거야 걔를 제대로 못 보셔서 그런 거라니까요?”

    “그래. 난 계속 바닥에 쓰러져 있었으니 말이다, 응? 아무튼 난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다 개운하다. 샘과 만나서 어떻게 할지 더 얘기해보자꾸나. 너와 그 애가 너무 피곤하지만 않다면 말이다.”

    운전대를 잡은 딘이 인상을 구겼다. 파멜라를 어떻게 했는지 보고도 천사를 믿는 바비와 샘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는 파랗고 파란 눈동자를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노력하면서―그리고 처절하게 실패하면서―액셀을 밟았다. 트럭은 가로등이 켜진 고속도로를 빠르게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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