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내/캐스딘] Lazarus Rising 1

    2023. 11. 20.

    by. 시두스

    키워드: 딘 시점의 401, 지옥에서 있었던 일, 선동과 날조

    분량: 공백포함 42,200자

    오래도록 해보고 싶었던 401 재해석 글입니다. 너무 뇌피셜이 듬뿍 들어가 있어서 원작 재해석이 아니라 그냥 연성 같기도 하네요?? 재밌게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참는 일은 고역이다.

    참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참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른다.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몸에 익히기만 하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리책을 몇십 권씩 읽었다고 유명한 셰프가 되지 않듯이 인내도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애초에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인내심은 쌓고 싶다고 쌓아지는 것이 아니다. 노력하면 조금쯤은 늘 수 있겠지만, 참기가 적성이 맞지 않는 사람이 무턱대고 인내심을 기르려 들다간 속부터 망가진다. 이미 그 선례가 수도 없이 많지 않은가.

    따라서 참는다는 것은, 인내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죽을힘을 다해 저 자신을 한계 저편으로 밀어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딘 윈체스터는 그 의미를 말 그대로 뼈저리게 아는 인간이었다. 참기가 극도로 요구되는 환경은 그를 평생토록 따라다녔고, 작은 아이가 빠르게 자라는 거름이 되었다.

    딘은 존이 설거지나 빨래, 식사 같은 것을 일일이 챙기지 않고 모텔을 나갈 무렵부터 참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어쩌면 직감했다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두 손으로 총을 쥐는 것조차 버거운 아이에게 직접 가르쳐 주지 않았으므로.

    그는 본능적으로 샘이 울 때면 자신도 울고 싶은 것을 참았다. 형이라면 동생과 같이 우는 게 아니라 동생이 울음을 그치게 해야 했다. 그 일이 끝나면 부모의 역할, 필요하다면 비틀린 생활 탓에 가질 수 없는 친구의 역할도 맡았다. 샘의 얘기가 지루해도 잘 들어줬고, 샘이 짜증을 부려도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그를 때릴 때에도, 어쩌다 그보다 더한 일을 할 때도 어금니를 꾹 깨물면서 고작 어린아이가 견디기에는 과도한 고통을 감내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속으로 삼키면서 존이 바라는 일 이상을 해낸다면, 조금씩이나마 아버지가 걱정할 일이 줄어들지도 몰랐다. 그러면 늘 피곤하고 슬프고 화난 얼굴이 언젠가 기억처럼 자상하게 웃어 줄지도 몰랐다. 

    이것이 고작 얼마 전까지 애플파이를 구워주던 엄마의 죽음과 주말이면 캐치볼을 하러 가던 아버지의 돌변을 이해할 수 없었던 어린아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 딘에게 괜찮다는 말이 입에 붙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괜찮다는 어리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한 끝에 얻은 도피처였다. 괜찮다고 계속 읊조리다 보면 정말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삶도, 가끔 턱밑까지 치미는 울음도. 괜찮다고 중얼거리면 누구도 주지 못하는 위안이 그를 찾아왔다. 스스로가 아니면 누구도 그를 괜찮다고 다독여주지 않았다. 그런 따스한 것을 바라기엔 존은 너무 지쳐있었고, 샘은 어렸다.

    딘은 몇 번이고 괜찮다고 했다. 입술이 부르트고 혀가 깔깔해지도록 스스로를 위로했다. 샘이 존과 크게 싸우고 스탠퍼드를 쫓아 집을 나갔을 때도, 홀로 사냥을 하다가 다쳤을 때도, 모텔 구석에서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그 상처를 홀로 꿰맬 때도, 심지어는 지옥견에게 찢겨나가는 그 순간에도 그에게 남은 것은 괜찮다는 말뿐이었다.

     

     

    지옥은 끔찍했다. 끔찍하다는 말이 존재하는 이유를 구체화한 것 같은 곳이었다. 비명, 신음, 괴성이 소용돌이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악이 행해졌다. 그곳에서 딘은 오히려 평온했다.

    정신과 육체가 갈려 나가면서 수반되는 고통은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책임질 것이 없는 상황은 그를 난생처음으로 자유롭게 했다. 아픔을 밖에 드러내는 것도, 그것을 참는 것도 그의 자유였다.

    비록 그 감정에 공감해주는 이는 없었지만―악마들이란 것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영혼을 보며 낄낄대기 마련이었다―기계가 고통을 호소하는 것처럼 쏟아지던 기묘한 시선 또한 없었다. 지옥에는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는 존도, 곤란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는 샘도 없었다. 딘은 그 사실이 기뻤다. 그는 마음껏 고통스러워했고, 고통을 표현하는 것을 즐겼으며, 심지어는 그것에 중독되기까지 했다.

    악마를 사냥하던 딘 윈체스터는 알라스테어의 고문을 30년 동안 버틴 끝에 무너져 악귀가 되었다. 쇠사슬에서 내려온 그는 고문 도구를 손에 쥐었다. 오롯이 그의 의지로 이뤄낸 일이었다.

    처음으로 의무의 무게에서 벗어난 인간은 같은 인간의 영혼을 찢어발기는 데에 한 치의 거리낌도 없었다. 쇠사슬에 걸린 이상, 진정한 죄인과 악마의 꼬드김에 넘어간 피해자를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했다. 잘 살았든 못 살았든, 똑똑했든 멍청했든, 모진 고문 앞에서는 모두 똑같이 비명을 질렀다. 딘은 그들이 이승에서 진실로 선했는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기꺼이 사람들의 살을 뒤집어 까고, 뼈를 드러내고, 내장을 밖으로 끌어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처절히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비는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끝내주는 음악이었다. 그것은 딘에게 빌어먹을 인생만을 선물해준 빌어먹을 신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딘은 그들의 피에서 무슨 냄새가 나고 무슨 맛이 나는지 똑똑히 기억했다. 살갗이 찢겨 나갈 때 손끝을 타고 온몸을 짜릿하게 하는 전율도 기억했다. 시간이 갈수록 고문 실력이 늘었다.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날카로운 칼을 집으면 눈이 만족감에 휘어지고 뾰족뾰족한 톱을 들면 가슴이 쿵쿵 뛰었다. 아드레날린이 혈관을 타고 온몸을 잠식했다. 딘은 즐거웠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을 치고 들어온 생각만 아니었다면 계속 그 쾌락 속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문득, 그는 이건 괜찮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남은 양심이라고 해도 좋고 스쳐지나가는 허튼 생각이라고 해도 좋았다. 어쨌든 그는 지금 상태가 정상적이지 못하다고 느꼈고, 미간을 찌푸렸다. ‘괜찮지 않다’니? 그건 나약한 놈들이나 내뱉는 헛소리가 아닌가. 자신은 충분히 지금에 만족해하고 있는데.

    분명히 나는 괜찮은데― 하고 생각한 순간, 딘은 명치를 두들겨 맞은 것처럼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얼마 만에 숨을 쉬었는지 놀라기도 전에 건전지를 갈아 끼운 로봇처럼 눈이 뜨였다. 딘은 눈동자를 굴려서 온 사방을 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감흥 없던 배경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피, 피, 어느 한구석 빠진 곳 없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빨갛다 못해 시꺼먼 주위를 돌아보던 그는 곧 마구 팔을 휘두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핏물이 밴 두 손은 마치 제 자아를 가진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제 몸이 뱀파이어 대신 사람의 목을 베는 것을 지켜보면서 딘은 생각했다.

    차라리 저게 내 목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후회하는 순간 누군가의 장기가 바닥으로 투둑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죄악 아래로 침잠한 녹색이 장기의 자취를 좇으며 아래로 향했다. 초점이 풀려있던 눈에 지금까지 자신이 짓밟던 이가 담겼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형체였다. 낯이 익다고 생각하자 이번에는 귀가 뜨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고통에 차서 내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처절하게 울려 퍼지는 비명이 끔찍했다. 토악질이 치밀어 올랐다. 뜻밖에 무언가가 볼을 타고 흐르는 감촉이 났다. 혀를 내밀어 그 액체를 핥아보니 짠맛이 났다. 한참 전에 메말라버린 눈물과 꼭 같은 맛이었다. 눈물 맛이 나고 위에서부터 흘러내려 온 것을 봐서는 아무래도 이것은 눈물인 듯싶었다. 왜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한 것인가. 어쩐지 이 질문의 답은 반드시 알아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는 사람처럼 집요하게 붙잡고 늘어졌다. 무언가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지금 제 눈앞에서 내장을 쏟아낸 사람과는 매우 친밀한 사이였던 것을 기억해냈다. 흰 피부, 온몸에 퍼져있는 주근깨, 붉게 물든 더티 블론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어떻게 모를 수 있었을까?

    딘은 멍하게 꿈틀거리는 자기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통제할 수 없는 몸으로는 가만히 보는 것 이외의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알라스테어 이 개새끼 그는 나오지 않는 욕을 짓씹었다. 그는 분노했다. 아니, 분노가 아니었다. 그는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이 그 어느 때 느꼈던 것보다 강한 자기혐오임을 불현듯 깨달았다. 그 혐오가 제 몸 안에서, 제 핏속에서 들끓고 있었다.

    스스로를 알아보지 못한 건 피 냄새에 코가 막히고 살덩이가 굴러다니는 광경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단히 착각했다. 이건 자유가 아니었다. 지옥의 환각이 그를 농락했을 뿐이다.

    서서히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닫혔던 수문이 열리듯 그동안 오간 데 없었던 온갖 감정이 어딘지 모를 곳에서 쏟아졌다. 이것은 잘못되었다, 이것은 틀렸다,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미 길이 든 몸은 순순히 멈추지 않았다.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돌덩이가 점점 속도를 내듯이, 살갗을 찢고 불에 지지고 뼈를 으스러뜨리는 행위는 더 격렬해졌다.

    그리하여 딘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통에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있었던 곳보다 훨씬 더 심하고 끔찍한 곳으로 떨어지겠거니 생각했던 것이 다였다. 그는 벼락이 떨어지는 것처럼 눈앞이 번쩍거리고 수많은 악마가 동시에 온몸의 살갗을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에 몸서리 쳤다. 피를 토한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아팠다. 지금까지 받았던 고문을 한 번에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 아프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지옥에서 지은 죄에 대해 속죄하기엔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그가 지옥에서 저지른 죄악은 다시 태어나서 다시 지옥에 떨어진들 갚을 수 없을 것이므로.

    심장이 옥죄어지는 듯 숨 쉬는 것이 점차 괴로워질 때쯤 차차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지옥에 와서 처음으로 정신을 잃어가는 그 순간에, 딘은 괜찮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욕을 내뱉지도 않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주변이 몹시도 어둡다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호흡하기 어렵다는 것.

    사방이 어둠으로 뒤덮여서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짐작하기도 어려웠으나 숨을 쉬기 어렵다는 것 정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밀폐된 곳 특유의 텁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산소가 줄어들고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이러다가 꼭 다시 죽겠다고, 딘은 생각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떻게든 있는 대로 쪼그라든 허파를 부풀릴 공기와 바짝 말라버린 목을 축일 물이 필요하다고 몸이 비명을 질러댔다. 몸은 어떻게든 살고 싶어 했다.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딘은 팔을 위로 뻗었다. 곧 손바닥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잠시 만져보니 나무로 된 무언가 같았다. 그는 힘을 주어 그것을 밀어보았다. 예상대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꼼짝없이 갇히고 만 건가. 그는 목구멍에 쌓이는 두터운 걱정을 억지로 삼키고 발로 바닥을 차보았다. 발로 차려고 무릎을 들어 올리자 무릎이 닿았고 허공을 차려고 다리를 뻗자 신발 굽이 바닥에 닿았다. 그렇다는 건 여기가 어디든 딱 자신이 누워있을 만한 공간밖엔 없단 뜻이다. 이 어둡고 좁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곳에, 자신은 갇혀버리고 만 것이다.

    딘은 해일처럼 몰려오는 패닉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이것이 또 알라스테어나 또다른 악마의 짓거리라면 겁에 떠는 모습은 절대 보여주지 말아야 했다. 그 새디스트 놈들이 즐거워할 거리를 하나라도 더 늘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쓸만한 물건을 찾아 몸을 더듬었다. 놀랍게도 신발, 바지, 속셔츠에 셔츠까지 전부 갖춘 차림이었다. 바지 주머니에는 라이터가 하나 들어있었다. 누가 무슨 꿍꿍이로 이것들을 준비했는지 몰라도 최소한의 상식은 있는 모양이었다. 혹은, 괜한 희망을 줘서 더 큰 절망을 맛보게 할 작정이거나.

    어쨌든, 굴러들어온 복덩이를 차버릴 만큼 좋은 상황도 아니었다. 딘은 조심조심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눈앞에서 불이 확 타올랐다가 금세 꺼져버렸다. 그 잠깐 사이에 보인 풍경만으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완벽히 알 수 있었다. 딘은 헛웃음을 뱉었다. 그는 관 안에 있었다. 귀신을 없애기 위해 매일 같이 파냈던 그 관 말이다.

    이게 바로 인과응보라는 건가. 딘은 마른세수를 했다. 이걸 재밌다고 생각했다면, 누군진 몰라도 텍사스 크기만 한 오산을 한 거다. 한숨을 쉰 딘은 숨을 들이쉬는 과정에서 산소가 급격히 줄어들었음을 느꼈다. 그는 손에 쥔 라이터를 무심결에 꾹 쥐었다가,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불을 붙이는 멍청이가 이 세상천지 어디 있냔 말이다.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흠씬 두들기면서 딘은 관뚜껑에 주먹과 발을 날렸다. 다행히 뚜껑을 못으로 박은 관은 아니었는지, 뚜껑 자체는 오래 지나지 않아 치울 수 있었다. 문제는 뚫린 뚜껑 틈새로 들어오는 흙이었다. 이거야말로 자신이 6피트 땅 아래에 묻혔다는 생생한 증거였다. 딘은 다급하게 몸 위로 쌓이는 흙더미를 헤치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손가락과 손바닥이 찢어져서 피가 새어 나왔지만, 그런 고통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마침내 손이 딱딱한 땅을 뚫고 빈 허공을 휘저었을 때, 딘은 미친 듯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헉헉, 거칠게 내뱉어지는 숨소리가 귓가에서 윙윙거렸다. 심호흡을 몇 번 하자 호흡에 모든 힘을 쏟지 않아도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40여 년 만에 마주친 빛 때문에 눈이 따가웠다. 제대로 두 발을 딛고 선 지가 언젠지 정신이 다 어찔했다. 다행히 어지러움은 금세 가라앉았다.

    “험하게 산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

    중얼거린 딘은 손으로 눈에 창을 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땅에는 성인 한 명이 겨우 비집고 나올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었으며, 티셔츠, 셔츠, 청바지 할 것 없이 온 몸에 나무 조각과 흙이 군데군데 붙어있었다. 검은 티셔츠 아래로 폐가 최대한 많은 공기를 빨아들이기 위해 크게 부풀었다 꺼지길 반복했다. 단단한 근육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괜히 뿌듯했다. 그 모습이 무지하게 어색하게 느껴지기 전까지만.

    “나 지금 숨 쉬고 있잖아?”

    떡 벌어진 입안에서부터 돌연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랫동안 굳어 있던 근육을 움직이느라 목 안이 따끔거렸지만, 그동안 당해온 일에 비하면 가렵지도 않았다. 딘은 반사적으로 삐져나오는 침으로 입술을 핥았다.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폐는 지극히 살아있는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지옥에서는 숨을 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미 죽었으니까. 숨을 쉬어서 폐가 부푸는 모습은 오랜만이다 못해 고대적의 관습 같아 보였다. 기묘하기까지 하는 장면에, 딘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이래서야 마치 자신이 살아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럴 일은, 없을 텐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깃털 같은 구름 하나 보이지 않는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누군가 일부러 그렇게 꾸며놓은 마냥 넓디넓은 창공에 떠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태양뿐이었다. 딘은 하늘을 보면서 썩 유쾌하진 않은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기분이 나쁘지도 않은 풍경이었다. 그저 묘했다. 파란 하늘이나 해나 도무지 지옥에 있을 법한 것들은 아니었다.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딘이 중얼거렸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볕이 너무도 따듯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꽤 쌀쌀한 공기가 살갗을 간질였고, 무엇보다 그동안엔 들리지도 않던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귀가 다 먹먹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이곳이 천국일 순 없었다. 딘 윈체스터는 천국과 연이 없을 인간이었다. 뭐, 연이 있느냐 없느냐는 둘째치고서라도, 이곳이 진정 천국이라면 왜 땅속에서 기어 나와야 했겠는가? 신이라는 작자가 아무리 고약해도 그렇지, 천국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신입 환영회를 이딴 식으로 할 리가 없다.

    하지만 천국도 지옥도 아니라면 지구밖에 없는데, 그건 즉 그 자신이 부활했다는 뜻이었다…….

    “그럴 리는 없어.”

    딘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지옥에 떨어진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죽은 사람이 성경에 나올 만큼 신성하거나 거래 대상이 신이나 죽음 그 자체라면 또 몰라도, 평범한 인간이 지옥에서 벗어난 선례는 없었다.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딘 윈체스터에게는 일어날 리 없는 이야기다.

    한숨을 쉰 딘은 다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 눈에 잡혔다. 등줄기가 오싹했다. 영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른 침을 삼키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근처 나무들이 그가 파헤치고 나온 땅을 중심으로 죄다 쓰러져서 동그란 원을 그리고 있었다.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그의 지식 내에서 이런 일을 저지를 만한 존재는—

    “샘?”

    동생의 이름이 자동으로 입 밖을 튀어나가자 딘은 저도 모르게 헉,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가 동생을 구하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면 그의 하나뿐인 동생이 똑같은 일을 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유언처럼 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들어먹을 녀석이 아니다. 오히려, 샘은 똑똑한 만큼 더 엄청난 짓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 쓰러진 나무들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딘은 벌컥 겁이 났다. 이만한 힘을 얻으려면 댓가로 무엇을 얼마나 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만약에라도 샘이 제 목숨을 담보로 저를 살린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에겐 뭐가 남았지?

    그는 신발 끝을 눈빛으로 뚫어버릴 것처럼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몰랐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무덤에서 몸을 일으킨 것이 어떤 식으로든 샘과 관련이 있다면, 그가 다시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것을 올바르게 돌려놓을 거라는 점이었다. 그러려면 전체적인 그림을 봐야 했다. 그래야 어떻게 할지 작전을 세우거나 이도 저도 안 되면 그냥 부딪혀볼 수 있으니까.

    딘은 심호흡을 하고 그림자 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발을 뗐다. 이곳이 그가 아는 땅이 맞다면 어딘가에서는 전화기 하나둘쯤은 나올 테다.

    도로를 따라 십여 분 정도 걷자 멀리에 허름한 주유소 하나와 자동차 한 대, 그리고 공중전화기가 보였다. 딘은 흠, 소리를 내면서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손끝에 먼지와 모래 몇 톨이 닿았을 뿐,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죽은 사람 주머니에 동전을 넣는 유행은 몇천 년 전에 끝났지. 하기사, 다시 생각해보면 돈은커녕 사냥꾼들의 장례대로 시체가 태워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는 작게 한숨을 쉬곤 걸음을 서둘렀다. 땡전 한 푼 없더라도 가게에서 전화 한 통은 빌릴 수 있을 터였다.

    불행히도, 주유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위화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손님이 없어도 가게 밖으로 점원이 보는 TV나 라디오 소리가 으레 새어 나오기 마련인데 잡음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어느덧 주유기 앞까지 온 딘은 주변을 살폈다. 사람은 물론이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오늘이 휴일이라 문을 닫은 걸지도? 그 물음에 답하기라도 하듯 정문 앞에는 <열림> 팻말이 붙어있었다.

    주인이 잠깐 자리를 비웠을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는데, 그렇지만, 글쎄. 윈체스터의 인생이 그렇게 쉽게 돌아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기가 없음을 통탄하면서, 딘은 문에 난 창으로 안을 둘러보았다. 라디오, TV는 물론이고 가게 안의 등까지 전부 꺼져있었다. 누군가가 잠깐 자리를 비운 것 같기는 개뿔이. 누가 있었던 흔적 자체가 아예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딘은 경보기나 CCTV가 있는지 확인한 다음, 겉 셔츠를 벗어서 손에 감고 유리창을 깼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자 익숙한 유리 조각이 밟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는데, 마치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 건물로 들어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선 딘은 제일 먼저 타는 듯한 갈증부터 풀었다. 빠르게 물 한 병을 해치운 그는 옆에 놓인 신문으로 자신이 죽은 지 4개월이 지났음을 알았다. 원래도 짧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특히 샘에겐 무슨 일을 꾸밀 정도로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딘은 샘이 자신이 없는 동안 어떤 것에 손을 댔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원래 머리 좋은 놈이 사고를 치면 더 하지.”

    혀를 차면서 그는 가게 한 편에 자리 잡은 수도꼭지로 이동했다.

    얼굴에 묻은 흙과 땀을 닦아낸 그는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다가 호기심 반, 의심 반인 심정으로 옷을 가슴께까지 들어 올렸다. 분명히 지옥견에게 비참할 정도로 찢어발겨 졌던 살가죽이 멀쩡했다. 이왕 살려주는 김에 선심 좀 쓰겠다는 건가. 그는 살짝 미간을 좁히고 거울을 노려보았다. 동정 같은 건 질색이다. 목적도 이유도 모른 채 되살아난—딘은 속으로 마지못해 인정했다—지금은 더욱 그런 문제에 예민했다.

    그는 한참을 더 거울 속 자신과 눈싸움을 하다,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소매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걸어오면서 계속 미미하게 따끔거렸던 것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점점 바늘로 쿡쿡 쑤시는 것처럼 아파졌다. 지옥에서 입은 상처거나 살아돌아온 부작용 같은 건가 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옷을 걷어 올린 딘은 어깨를 온통 뒤덮은 손자국과 마주했다.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뚜렷하게 남은 손자국은 딘이 겁을 집어먹게 하기 충분했다. 그는 새빨간 손바닥 자국을 남긴 것이 알라스테어일지 아니면 이름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악마일지 감히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즉시 달아날 준비를 해야겠단 생각을 했을 뿐이다.

    딘은 서둘러 열량이 높은 초콜릿 바와 생수병 여러 개를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잘빠진 미녀들이 실린 아시안 뷰티를 챙기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다음으로는 계산대에 있는 돈을 챙겼다. 그는 계산대에 있던 지폐를 몽땅 집어서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그러는 내내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옥에서 받았던 것처럼 이런저런 추잡한 욕망이 들끓진 않았지만, 훨씬 더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이상한 건, 그 시선이 전혀 불쾌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을 굳이 말로 풀자면 흙을 파헤치고 나와서 처음으로 파란 하늘을 바라봤을 때 느낀 감정과 가까웠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고 긴장이 풀리는, 아주 익숙하고 편안한 기분.

    딘이 그 묘하게 붕 뜬 기분과 불안함 사이를 오가던 참에 라디오와 TV가 지지직거리며 살아났다. 그는 둘을 켜는 버튼을 누른 적 없으니 두말할 것 없이 다른 존재의 소행이었다. 딘은 당장 TV를 껐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전원이 켜졌다. 그는 재빨리 소금통을 집고 입구를 뜯었다. 머릿속에서 위험신호라는 위험신호는 모조리 켜져서 윙윙거렸다. 곧 창문틀에 낀 유리가 덜컥거리더니,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과격하게 온 사방이 흔들렸다.

    위험해. 그때 누군가가 속삭였다. 숙여라.

    소금을 창문 틈새에 뿌리던 손이 멈칫했다. 그 속삭임은 귀를 거치기보다 머릿속으로 곧장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딘은 아주 잠시 그것이 누구의 짓일지 고민하다가 재빨리 귀를 틀어막고 몸을 숙였다. 어쨌든, 그의 감각도 똑같은 일을 하라고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가 몸을 숙이자마자 그가 서 있던 곳으로 깨진 창문의 파편이 우수수 쏟아졌다. 그 후엔 건물 전체를 뒤덮은 흔들림이 멎었다. 딘은 주변이 조용해진 것을 확인하고 비닐봉지를 챙겨서 유리 파편이 뒤덮은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곳에, 혹은 이 근처에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온 딘은 바로 공중전화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샘의 모든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가, 동생이 그 번호들을 더는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아랫입술을 물면서 마지막으로 바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물론 그 전화는 매몰차게 끊겼지만, 딘은 차마 바비를 욕할 수 없었다. 바비 싱어만큼 부활에 냉소적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쨌든 샘도 바비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딘 윈체스터는 이 세상에서 혈혈단신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였다. 일단 행동하는 것.

     

     

    바비의 집까지 먼 길을 달려온 딘을 반긴 것은 얼굴에 뿌려진 성수 반병이었다. 성수를 시작으로 여러 ‘진짜’ 딘 윈체스터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긴 했지만, 마침내 바비는 딘이 돌아왔음을 인정했다. 비록 노인이 다시 살아났다는 표현을 극히 절제하긴 했어도. 딘은 노련한 사냥꾼을 이해시키는데 생각보다 쉬웠단 사실을 달갑게 받아들였다. 자신 같았으면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사람을 창고 깊숙한 곳에 묶어두고 몇 달을 괴롭히고 나서야 겨우 받아들였을 테니까.

    딘은 바비와 짧게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샘에 관해 물었다. 바비는 부정적인 답을 내뱉었다.

    “그 녀석 완전히 몸을 사린 모양이더라고.”

    그는 숨을 멈췄다. 바비가 샘을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면, 샘은 말 그대로 그가 하려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동생이 자신을 되돌려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 위로 무겁게 떨어졌다. 딘은 두려웠다. 진정으로, 그에게는 샘이 했을 만한 거래를 되돌릴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샘이 없어진 것이 마치 바비의 탓이라도 되는 양 화를 냈지만, 바비의 말에는 그의 것보다 더 큰 슬픔이 묻어있었다. 딘은 더 꺼내려던 말을 목구멍 안으로 억지로 처박았다. 지금 정말로 중요한 것은 바비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말다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동생을 찾아야 했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었다. 아니,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동생이 어떤 가명을 썼을지, 어떤 사회 보장번호를 댔을지는 손을 잡힐 듯 떠올랐다. 나비가 꽃을 찾아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위치를 추적하자 샘의 전화기는 딘이 깨어난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모텔에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저 단순한 가설일 뿐이었는데 눈에 보이는 증거가 쌓여가자 불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는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나, 걱정하면서 자동차 액셀을 밟았다.

    자동차 안에서는 딘이 걱정한 것처럼 대화가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바비가 할 말이 많은 얼굴을 한 것과는 다르게 완고하게 달라붙은 입을 열지 않아 준 덕분이었다. 딘으로서는 단지 바비가 자신을 배려해주고 있거나, 샘에게 했던 말을 또 하는 일을 피하는 중이라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클래식 록을 듣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라디오를 켜지 않은 채 차를 몰았다. 바비가 그를, 혹은 자신을 나무라듯 그간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는 것을 빼면 그들은 조용히 도로를 달렸다.

    모텔 앞에 도착한 후에는 모든 일이 빠르게 일어났다. 그들은 샘을 찾았고, 샘이 그를 무덤에서 일으켜 세운 것이 아니며, 누구도 자신과 거래하려 하지 않은 분노를 사냥으로 풀고 있었음을 알아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악마와 거래를 한 것이 아닌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지상에 돌려보낸 것이 누구, 아니 무엇인지는 미궁에 빠져 있었다. 샘이 어떻게 혼자 몸으로 악마를 사냥하고 있었는지 또한 의문이었다. 딘은 새롭게 떠오른 의문을 일단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당장은 샘의 갑작스러운 재능보다 그를 되살린 존재가 더 시급한 문제였다.

    “그나저나 샘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절 되살린 거죠?”

    “그걸 꼭 알아야겠어?”

    “당연하지. 누가 우리한테 그냥 좋은 일을 해준 적 있냐?”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이제 그냥 좋은 일이 일어날 때가 되긴 했지. 평범한 사람들은 다 그러잖아.”

    “우리가 평범했던 적은 있고?”

    “딘. 난 지금 형을 도우려고 하는 거라고.”

    딘의 물음에 샘이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되물었다. 딘은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은 샘에게 눈을 치떴다.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은 데다가 도무지 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부활과 샘이 직접적 관계가 없다는 걸 알았으니 어깨에 올라간 짐이 줄긴 했지만,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의 구원자―딘은 코웃음을 쳤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이름조차 몰라서 그 존재, 그것, 구원자 따위로 부르는 마당이라 제대로 조사를 할 수도 없었다.

    그들이 그나마 아는 사실; 인간을 지옥에서 끌어 올릴 수 있고, 십수 개의 나무를 쓰러뜨릴 만큼 강력하며, 악마와 어떻게든 관련 있고, 인간의 몸에 손자국을 남긴다는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존재는 웬만한 로어나 문헌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인간을 구원한다는 사실만 따지자면 천사가 제일 그럴듯했으나, 천사가 윈체스터와 관련이 있었던 적은 저 먼 옛날 메리가 잠 못 드는 어린 딘을 재울 때뿐이었다.

    천사가 널 지켜볼 거란다.

    딘은 메리의 말을 떠올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것은 이 상황에서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딘은 명백한 사실을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 그럼 네가 우연히 쫓던 악마들이 내가 기어 나온 곳에서 몇 마일 안 떨어진 곳까지 와있었단 사실은 너한텐 전혀 문제로 느껴지지 않나 보다?”

    “형! 말했잖아, 나는―”

    “거기까지 하는 게 어떠냐, 너희 바보들 둘 다?”

    드디어 둘의 말싸움을 견디지 못한 바비가 입을 열었다. 바비는 질린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성인이 된 지 한참이나 되었지만, 그들을 존보다도 아끼고 사랑한 바비 싱어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샘은 더 하고 싶은 얼굴이었으나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바비는 샘을 잠시 쳐다보다가 만족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딘은 팔짱을 풀고 어깨를 으쓱였다.

    “전 잘못한 거 없어요.”

    “황소고집을 부려놓고 잘못한 게 없기는? 샘이 말한 것처럼 너에게도 드디어 좋은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잖냐. 이미 일어난 일은 받아들이거라. 그래야 네가 말한 대로 다음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지.”

    “제가 그러고 있었잖아요.”

    “그랬다고? 나한텐 작은 공주님이 성질을 부리는 것처럼 들렸는데 말이다.”

    “제가 언제요.”

    “거봐라, 지금도 그렇지.”

    옆에서 샘이 푹 웃음을 터뜨렸다. 딘이 동생을 세게 노려보자 바비도 결국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딘은 허, 콧소리를 내면서도 내심 안도했다. 4개월간 떠나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모든 대화가 이전과 같았다. 바비도 샘도 그가 없는 동안 조금씩 바뀌었긴 했지만, 본질까지 바뀌어버리지는 않았다. 반면에, 딘 윈체스터는…….

    “그래요, 뭐 그렇다고 하자고요. 돌아오니까 좋네요.”

    지옥에서 자유의지와 피를 맛본 그는 그때의 기억을 머리 저편으로 넘겨버리며 대꾸했다. 위선자. 기다렸다는 듯이 알라스테어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 , , . 넌 이미 영혼의 뿌리 끝까지 지옥에서 썩어버렸어. 기억나지 않아? 네가 찢고, 베고, 자르고, 뜯어냈던 살갗, 살점들이? 웃음기 없는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귓가를 울렸다. 딘은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지옥에서 있었던 일은 영원히 그가 짊어지고 갈 십자가로 남아 그를 골고다 언덕 위까지 채찍질할 터였다.

    딘이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바비가 종종 도움을 받는다는 영매를 찾아가 보자고 제안했다. 샘이 그의 부활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닌 이상 실마리가 없어진 셈이니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들끼리 조사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고, 바비가 믿을만한 조력자라면 윈체스터 형제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형제가 동의하자 바비는 주소를 알려주고 모텔방을 나섰다. 샘이 나갈 채비를 마치고서는 형제도 바비의 뒤를 따랐다.

    임팔라는 모텔 주차장 구석에 주차되어 있었다. 임팔라가 최신형 차보다 더 넓고 길어서 차가 자주 다니는 길에 두면 긁히기 쉬우므로 생전에 주차하던 방식 그대로였다. 베이비의 반질반질 윤이 나는 새까만 몸체를 보자 정말 다시 살아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딘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눈치가 빠른 샘이 자동차 열쇠를 넘겨주었다.

    “어째 나보다 임팔라를 더 반기는 것 같네.”

    “당연한 거 아냐?”

    놀리는 말도 덤처럼 따라붙었다. 딘은 가볍게 대꾸하고 임팔라를 쓰다듬었다. 끝내주는 차체가 4개월 전과 같이 손바닥을 매끄럽게 타고 넘어갔다.

    “베이비, 새미보이가 널 숙녀답게 대해줬니?”

    “당연하지. 거의 유언이나 다름없었잖아.”

    여기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건 너무 치사하지 않아? 딘이 생각했다. 농담을 다큐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되받아치려던 말이 입속에서 부스러진다. 그는 할 말을 찾지 못해 겸연쩍게 손가락으로 임팔라 후드를 톡톡 두들겨보고 말았다. 샘은 그 동작을 빤히 보다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딘은 홀로 운전석 쪽 문 옆에 서서 홀로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온 매연 냄새와 도시의 냄새가 났다. 어디에서도 유황 특유의 달걀 썩은내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냄새가 코끝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아, 딘은 고개를 흔들어 냄새를 떨쳐버리고 문을 열었다.

    다시 임팔라 운전석에 앉아 가죽 핸들을 손에 쥔 감각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베이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팟 포드가 눈에 거슬렸지만, 한층 고양된 기분을 완전히 망칠 수는 없었다. 샘은 그가 포드 째로 아이팟을 뒤로 던져도 군말 없이 넘어갔다. 어쩌면 나올 군말이 없어서인지도 몰랐다. 샘은 딘이 살아 돌아온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의 하나뿐인 동생은 그가 부활한 정황이나 그를 살려낸 존재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것이 그 과정에 샘 본인이 연루되어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관심이 없어서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그를 괴롭게 했다. 딘은 복잡미묘한 기분으로 샘을 쳐다보고는 임팔라에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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