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내/캐스딘] Lazarus Rising 2

    2023. 11. 20.

    by. 시두스

    딘 윈체스터를 지옥으로부터 구원한 존재는 카스티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천사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성녀 마리아에게 신의 아들을 수태했다고 알려준 천사 말이다. 물론 그 역할을 한 건 가브리엘이라는 대천사니까 다른 개체겠지만, 아무렴, 옆자리에서 샘이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는 것만으로 이름값은 이미 톡톡히 했다.

    딘은 그 카스티엘을 붙잡기 위해 소리 높여 주문을 외우는 파멜라를 흘끔댔다. 그녀가 목소리를 높일수록 중앙의 촛불이 크게 타올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유소에서처럼 주변이 점점 세기를 더하며 마구 들렸다. 딘은 유리가 깨지기 직전에 들었던 목소리를 떠올랐다. 가게를 흔든 것도, 그에게 말을 건 것도 모두 천사의 소행인가? 그렇다면 왜 지금은 아무런 말도 걸지 않는 거지? 딘이 막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순식간에 영매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비릿하게 고기 타는 냄새가 방 안에 진동했다. 어떻게 손 써볼 틈도 없이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 파멜라가 비명을 질렀다. 딘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손이 벨트 틈에서 무언가를 다급하게 찾는 동안 바비가 911에 전화하라고 외치는 것이 지독하게 멀리서 들렸다. 바비의 팔 안에서 파멜라가 고통에 찬 목소리를 내는 것 또한 비현실적이었다.

    “눈이 안 보여요, 바비. 눈이. 눈이!”

    “파멜라, 팸! 젠장! 딘, 샘! 어서 병원에 전화를 걸어라! 얼른!”

    “네!”

    주변이 부산스러웠으나 딘은 평온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 비명은 이제 너무나도 익숙한 소리였기 때문에,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눈앞이 흐려서 무언가를 집었다는 감각만 있을 뿐, 그것이 무엇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바비가 전화를 걸라고 했으니 전화기를 집어 들었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지옥을 떨쳐내고 계속 사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딘? 지금 뭐 하는 게냐?”

    하지만 딘은 바비가 놀람과 공포가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순간 깨달았다. 제가 손에 쥔 것은 전화기가 아니고, 파멜라의 비명을 연장할 무언가였음을. 어디에서 찾았는지 모를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나고 있었다. 바비는 유리조각과 딘과 파멜라를 번갈아 보고는 딘에게 손짓했다. 딘은 멍하니 유리조각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바비가 가리킨 반대쪽 팔을 부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구급차에 파멜라와 바비가 올랐다. 딘은 아득하게 구급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옆에서 샘이 무어라 말을 걸었지만, 그에겐 그저 배경 잡음으로밖엔 들리지 않았다. 한동안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던 샘은 딘의 상태를 눈치챘는지 입을 다물었다.

    “안을 정리하고 먼저 임팔라에 가 있을게.”

    몇 마디 말 중에서 겨우 알아들은 문장이었다. 딘은 이미 사라져버린 샘을 향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따듯한 햇볕과 적당히 시원한 바람을 받으면서, 그는 그 안의 무언가가 부서졌음을 처절하게 시인했다. 임팔라를 몰고 치즈버거를 먹으며 덜떨어진 악마를 상대하는 일상이 어색했다. 샘과 주고받는 모든 말이 낯설었다. 분명 제가 한 말인데, 제가 한 것 같지 않았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은 것 같았다. 어느 부분은 부족하고 어느 부분은 차고 넘치는 기분. 딘은 땅 위의 단조로움 속에서 익사해버릴 것 같았다.

    다시 땅을 딛고 설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바비가 보여준 책에서 설명한 것처럼 구원 따위가 아니었다. 차라리 저주였다. 고통이었다.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매 순간을 함께 했다. 언제 어디서 이성을 잃을지 몰랐다. 어떤 말, 어떤 사건이 도화선에 불을 붙일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딘은 숨을 쉬고 올바른 사고를 하는 것에 더는 자신이 없었다. 땅을 밟을수록 점차 지옥에서 몸에 밴 습관이 되살아나고 지옥에서 했던 일이 머릿속을 넘실거렸다. 알라스테어 대신 고문대를 다룰 동안 흔적 없이 사라졌던 죄악감이 해일처럼 덮쳐왔다.

    그러나 죄악감보다 그를 망가뜨리는 건 지옥에서 맛봤던 쾌락이었다. 잠시라도 인이 박인 충동이 다시 그를 지배한다면, 딘 윈체스터는 지구 위를 걷는 악마들과 다를 바가 없어질 터였다.

    그 때문에 딘은 죽고 싶었다. 차라리 지옥이 낫겠다고, 딘은 생각했다. 허탈한 웃음소리가 입을 빠져나갔다. 지금은 지옥으로 돌아간다는 선택지가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게는 지옥에서 벗어날 자격이 없었다. 어쩌면 천사는 그를 지옥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더한 고통을 선사했는지도 몰랐다. 이걸 노리고 움직였다면, 그것은 딘 윈체스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 추측은 겨우 딘의 입맛에 맞았다. 누군가가 그에게 고통을 주고 싶어 한다는 것. 그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카스티엘은 도대체 왜, 어떤 목적으로 딘 윈체스터에게 다시 숨을 불어넣었는가?

     

     

    카스티엘.

    그 이름은 다른 일을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딘의 뇌를 지배했다. 정체만큼이나 괴상하고 낯선 이름이었다. 그리고 절대로 믿음이 가지 않는 단어이기도 했다. 그렇잖은가. 딘 윈체스터를 지옥에서 꺼내온 것이 천사라니. 은밀하게—실은 대놓고—블랙코미디를 즐기는 딘조차도 웃지 못할 이야기였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카드 사기로 자동차 모텔비를 내고 포커게임에서 딴 돈으로 자동차 기름값을 대는 이에게 천사가 무슨 볼일이냔 말이다.

    샘이나 바비는 이 카스티엘이라는 존재가 악마가 아니라 그런대로 만족하는 눈치였지만, 딘은 어딘지 께름칙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어떤 일에는 반드시 원인과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게 피가 됐건, 재물이 됐건, 목숨이 됐건. 정말로 ‘천사’가 실재한다면, 지금까지 겪어온 일들로 미루어 보건대, 천사는 그를 살려낸 대가로 무언가를 반드시 요구할 것이었다. 만약 천사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한다면, 딘 윈체스터는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딘은 뇌리에 뿌리박힌 지옥의 광경을 재차 떠올리곤 두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꿈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다.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고…….

    “형.”

    “어, 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생각이 단박에 끊어졌다. 딘은 소리를 좇아 고개를 들었다. 샘이었다. 동생은 침대 헤드에 베개를 두고 기대 누운 형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딘은 묘한 표정을 지은 샘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없이 내민 맥주병을 받았다. 그가 기계적으로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마실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샘은 꿀꺽꿀꺽 맥주가 넘어가는 소리를 듣다가 툭 내뱉듯 말했다.

    “지옥에 있을 때 기억이 돌아온 거야?”

    “아니. 왜?”

    “그냥. 아까 다이너에서 돌아온 다음부터 계속 멍하게 앉아만 있잖아.”

    “그게 뭐?”

    “혹시 그 악마 때문에 지옥에 있던 일이 생각난 건 아닌가 하고. 있을 법한 얘기잖아.”

    “고작 멍청한 악마 하나 만났다고 깡그리 날아간 기억이 떠오르겠냐?”

    “아니 뭐, 안 났으면 안 난 거고. 끔찍했을 텐데, 모르면 다행이지.”

    그렇게 말한 샘이 어깨를 으쓱였다. 마음에 두고 있던 고민거리 하나를 털어낸 듯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딘은 맥주를 또 한 모금 크게 마셨다. 시원하고 쌉싸래했다. 철 맛을 뺀 피같이. 불쑥 떠오른 생각을 맥주 한 모금과 넘긴 그는 문득 샘도 일단은 죽어봤다는 것을 새삼 떠올렸다. 샘도 죽어있을 때를 기억할까? 딘은 가만히 맥주병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뗐다.

    “너 있잖아.”

    “응.”

    “그, 뭐냐…….”

    “뭐? 뭔데? 할 말 있어?”

    샘에게서 걱정 반, 호기심 반이 섞인 눈길이 쏟아졌다. 딘은 말을 어물거렸다. 궁금하긴 했지만, 막상 물어보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사후세계에 대한 걸 물어도 되는 것일까. 괜한 말을 했다가 샘이야말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떠올려 버리는 게 아닐까.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사후세계에 대해 평탄하게 대화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그 자신이 어두운 기억에 잠식되지 않을 수 있을까.

    딘이 마른 혀로 까슬한 입술을 핥았다. 마실 것이 손에 들려있다는 것은 좀 더 나중에 생각났다. 병 표면에 맺힌 물방울로 손바닥이 축축해졌을 즈음, 그는 갈증이 난 사람처럼 맥주를 들이켰다. 딘이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하자 샘의 표정에서 점점 호기심이 지워지고 걱정이 떠올랐다. 왜 그래, 딘, 하는 소리가 나오기 전에 딘이 먼저 선수를 쳤다.

    “아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 거 맞아? 뭐 숨기고 있는 거 아니지?”

    미심쩍다는 목소리가 추궁했다. 딘은 제 목소리를 믿을 수 없어서 고개만 까딱였다. 물론이지, 그 한 단어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샘은 한동안 그를 의심스럽게 쳐다보다가 선선히 시선을 치웠다. 괜한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익숙하게 알루미늄으로 된 싸구려 식탁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드는 모습이 필요할 때 언제든 얘기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늘 그랬다. 윈체스터라면 누구나 입으로 하는 말보다 몸으로 하는 말이 더 편했다. 그렇게 소통하면 덜 싸우기도 한다는 점은 보너스였다.

    딘은 샘의 사소한 배려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언젠가 때가 되면 샘에게 모든 이야기를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럴 일이 없을 거라는 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지만, 딘은 그렇게 믿었다. 아주 먼 옛날이긴 하지만, 둘이 서로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을 때도 있었으니까.

    그는 병에 남은 맥주를 모조리 마시고 커피 테이블에 탁 내려놓았다. 그 소리에 흘끗 시선을 던진 샘이 병을 바라보면서 입술을 핥는 딘을 보곤 픽 웃음을 뱉었다. 샘은 긴 팔을 뻗어 냉장고를 연 다음 맥주병 두 개를 꺼내어 노트북 옆에 한 병 올려놓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병은 침대 쪽으로 휙 던졌다.

    “아쉬우면 한 병 더 갖다 마시면 될 걸 그래?”

    샘의 몸짓을 주시하고 있던 딘은 깜짝 놀라 괴상해진 표정으로 날아오는 병을 낚아챘다. 장난기가 가득한 샘의 목소리에 열이 받은 딘은 병뚜껑을 딸 생각도 하지 않고 표정을 구겼다.

    “다치면 책임질 거야!”

    “고작 그런 거로 다칠 거면 사냥꾼 생활 접어야지.”

    “못 본 사이에 간이 배 밖으로 나왔냐?”

    “내가 뭘.”

    “이, 이, Bitch!”

    “Jerk.”

    무척 오래간만에 입에 담아보는 단어가 그렇게 그립고 애절하고 서글플 수 없었다. 히죽히죽 웃는 샘을 등진 딘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맥주를 들이켰다. 조금 전에 마셨던 것보다 더 시원하고 덜 썼다. 더는 피 같은 느낌이 나지 않았다. 그것참 다행이었다.

    그 뒤로 대화가 끊겼다. 샘은 노트북을 두들겼고 딘은 바비가 가져다준 고서적을 뒤적였다. 바비가 잠시 들를 데가 있다며 자리를 비워서, 모텔방엔 윈체스터 형제 둘 뿐이었다. 딘은 하품을 쩍쩍하면서 맥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이제는 아무도 쓰지 않는 고어로 쓰인 문헌 속에서 천사에게 지옥에서 구원된 영혼 따위를 찾아 헤매는 일이 손톱만큼이라도 재밌을 리 없지만, 옆에서 단조로운 소리가 계속 들리니 몇 배는 더 따분한 것 같았다.

    타자 치는 소리에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생각해보면 근 이틀 내내 운전대를 잡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느라 제대로 눈을 붙일 시간이 없었다. 딘은 책—이라기에는 양피지에 가까웠지만—몇 권을 훑어보다가, 이윽고 손을 뗐다. 어차피 산더미처럼 쌓인 양피지들 안에 그들이 찾는 정보가 있을 확률은 극히 낮았다. 일정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지다가 끊어지다가 다시 이어진다. 한참이나.

    어느 순간 “딘? 자는 거야?” 하고 저를 부르는 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딘은 그저 손을 들어 휘휘 공중에 휘두르고 말았다. 답하기도 귀찮았다. 샘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딘이 무슨 말에도 대답하지 않을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나서는 잠이 그를 집어삼켰다. 더없이 다행히도, 꿈 없는 잠이었다.

     

     

    딘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다음이었다. 이상함이 느껴져서 불현듯 잠에서 깬 것이다. 딘은 눈을 비비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TV와 라디오가 켜져 있었다. 모텔을 전전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고작 그런 소리에 잠이 깼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는 천천히 눈을 껌뻑였다. 좀 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샘과 코트 걸이에 걸려있던 샘의 곤색 코트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는데 굳이 코트를 입고 갈 리는 없을 테니 모텔방에는 그 혼자뿐인 것 같았다. 뭐 때문에 잠에서 깬 거지. 딘은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면서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잠이 들려는 찰나에 TV와 라디오의 볼륨이 올라갔다. 뇌가 쓸모없이 덧붙였다. 전에도 이런 일 있지 않았나?

    카스티엘. 그 자식이 틀림없어!

    가슴 깊숙한 곳,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비명을 질렀다. 딘은 그것이 뭔지 알 수 없었지만, 곧장 샷건을 집어 들고 몸을 일으켰다. 사냥꾼 생활에서 배운 교훈이 있다면 본능을 거슬러봤자 좋을 건 없다는 것이었다. 딘은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옆 침대가 흐트러진 채로 비어있었다. 샘 녀석은 자다가 나간 건가? 이 밤중에 무슨 볼일이 있다고? 복잡한 머리 속에서 그와 바비를 피자 배달부로 오해했던 여자가 튀어나왔다. 크리스티랬던가? 실소를 흘린 그는 조심스럽게 현관을 향해 움직였다. 발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왜 그리 움직여야 하는지 이유를 생각해보기도 전에 귀를 터뜨릴 것 같은 고주파가 들려왔다. 두 발로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높고 강한 에너지가 휘몰아쳤다. 곧 방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유소에서의 일은 비교도 되지 않을 세기였다. 이번에는 숙이라는 목소리도 무엇도 없었다. 그저 귀가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몸 위로 떨어지는 유리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상처가 그를 습격해댔다. 손바닥이 축축해지는 느낌이 났고, 그것은 아마 온전히 땀 때문은 아닐 것이었다. 때맞춰 방으로 뛰어 들어온 바비가 없었다면, 딘 윈체스터는 지옥에서 돌아온 지 고작 이틀 만에 땅 아래로 돌아갔을지도 몰랐다.

    바비는 방으로부터 딘을 끌어낸 다음 등으로 문을 있는 힘껏 닫았다. 쾅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나고서야 옆옆 방에서 문을 열고 복도를 내다본 걸 보니, 천만다행으로 그 요란한 소리가 방 밖으로 새어나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딘은 눈짓으로 바비에게 최대한 감사를 표하면서 헐떡이는 숨을 가다듬었다. 바비는 복도를 두리번거리는 사람을 힘껏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놀란 사람이 문을 닫고서야 바비가 입을 뗐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게야?”

    “무슨 일이 일어나긴요, 카스티엘이 일어났죠.”

    “카스티엘? 그 천사 말이냐?”

    “걔가 왜 천사예요. 천사라고 사기 치고 있는 건지 어떻게 알고요.”

    “우리가 아는 한 영혼을 지옥에서부터 꺼내올 수 있는 건 천사뿐이야. 파멜라도 그렇게 말했고, 샘과 내가 아무리 책을 뒤져봐도 천사, 그게 다였다.”

    “진짜 열심히 찾아본 거 맞아요?”

    딘이 불퉁한 목소리로 묻자, 단박에 바비의 얼굴이 굳어진다. 꿈틀거리는 눈썹 끝에서부터 어떻게 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호통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딘은 더 하려고 준비했던 말 몇 마디를 억지로 목구멍 아래로 쑤셔 박았다. 바비 싱어를 잘못 건드렸다간 천국도 지옥도 가지 못한 채 떠도는 망령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넌 그 카스티엘이 이런 짓을 했다고 어떻게 확신하는 거냐?”

    “보나마나 뻔하죠. 이렇게 방을 다 부숴놓을 수 있는 게 또 누가 있겠어요?”

    “그렇지만 천사가 이런 짓을 했다는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지.”

    “증거요? 말씀드렸잖아요?”

    한참이나 딘을 수상하게 주시하던 바비는 일단 순간의 의문을 내려놓기로 한 것 같았다. 그 대신 바비는 미간을 찌푸리고 미심쩍게 되물었다. 이번에는 딘의 표정이 구겨졌다. 왜 그 자식을 감싸고 들려고 해요? 신경질적인 말이 튀어 나갈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아낸 딘은 나이든 사냥꾼을 찬찬히 살폈다. 단단히 팔짱을 낀 채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분명히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착각이었나. 한숨을 쉰 그는 쓰러져있던 자세에서 천천히 일어나면서 입을 열었다.

    “그, 기억나세요? 제가 아저씨한테 전화했을 때요.”

    “그래.”

    “그 바로 직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었어요.”

    “내게 전화했을 때?”

    “네, 가게가 완전 쑥대밭이 됐었다니까요. 지금이랑 똑같이요.”

    “허. 넌 지금까지 그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었고?”

    “여태껏 한 줄 알았죠. 워낙 정신이 없었잖아요. 그나저나 천사란 놈이 가는 곳마다 부수고 다니는 게 취미인가? 개자식.”

    다시 방으로 돌아간 두 사냥꾼은 유리 파편을 헤치며 조용히 짐을 챙겼다. 딘이 러그에 내동댕이친 샷건을 챙기고 침대 아래의 더플백을 끄집어내는 사이, 바비는 문고리에 방해하지 말라는 종이를 끼웠다. 혹시나 누군가가 들어와서 이 난리통을 보기라도 하면 보상 따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딘이 가방을 챙긴 것을 확인한 바비는 문을 열었다. 굳은살이 박이고 자잘한 흉터가 많은 손이 문고리를 잡았을 때, 신발 코를 내려다보고 있던 딘이 고개를 들었다.

    “바비 아저씨, 그 개자식이 이렇게까지 하는데 우리가 그놈을 불러줘야 하지 않겠어요.”

    “딘. 네 생각은 알겠지만, 그건 무모한 짓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 거야?”

    “무모한 건 알지만요, 소환 말고는 방법이 없잖아요. 그놈이랑 어떻게 말할 건데요. 기도라도 하게요?”

    “천사인 걸 생각하면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지.”

    “기도해서 먹힐 거였으면 우리 대부분은 지금보단 훨씬 잘살고 있겠죠.”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잔뜩 비꼬는 기색이 역력했다. 딘은 자신을 지옥으로부터 끌어올린 존재의 이름을 알아낸 후부터 줄곧 소환, 소환하고 염불을 외었다. 바비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이 천사라는 존재가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보고 나서는 선뜻 반대할 수 없을 거였다. 게다가 바비는 샘만큼이나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했다. 결국, 노인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어디서 소환의식을 치를지 정한 다음, 유리 파편을 대충 침대 아래와 방구석으로 치우고 주차장으로 터덜터덜 발을 옮겼다. 서둘러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에는 딘도 바비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최대한 빠르고 조용하게 건물을 빠져나가는 데 집중했다.

    “네가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하는 소린데, 천사가 정말 존재한다면 저 모텔방을 좀 고쳐놨으면 좋겠구나.”

    꾹 다물린 입이 열린 것은 바비의 트럭에 탄 다음이었다. 바비는 차에 시동을 걸면서 그렇게 말했다. 글로브박스에서 냅킨을 뽑아 귀와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던 딘은 황당한 기색을 숨기지도 않고 말을 뱉었다.

    “……농담이시죠?”

    “진담이고말고. 날 믿어라. 우리가 수리비를 내야 한다면 돈이 억 소리 나게 깨질 게다.”

    “아무렴요. 천사라는데, 와주기만 하면 무슨 부탁이든 못 들어주겠어요.”

    “허, 그거야말로 농담 감이구나.”

    바비가 픽 웃었다. 딘은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농담으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어째도 좋았다.

    이제 그를 좀먹던 질문이 하나 해결될 터였다. 일이 제대로 풀린다면의 얘기지만,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죽을 기세로 덤벼들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할 일이 정해지자 어깨에 얹혀있던 짐 하나가 내려간 것 같이 홀가분했다. 딘은 카 시트에 몸을 기대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바비, 샘이 어딨는지 아세요?”

    “아니. 내가 나갈 때까지만 해도 방에 있었질 않니.”

    “그랬죠. 방이 저 모양이 되기 전에 잠깐 둘러봤는데 없더라고요. 잠깐 존 사이에 어딜 간 것 같아요. 전화해 보면 어디로 갔는지 알겠죠, 뭐.”

    딘은 스피드다이얼에 등록해놓은 샘의 번호를 꾹 눌렀다. 통화음이 대여섯 번 반복되어도 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기계음을 들으면서 그는 Come on, Come on, 하고 아랫입술을 물어뜯었다. 바비가 사이드미러로 딘을 흘끔거렸다. 끝내 받지 않으려나 생각한 순간 전화가 연결되었다. 딘은 턱 끝까지 치밀어오른 한숨을 삼켰다.

    “형? 무슨 일이야?”

    “그냥. 아무 일도 아냐. 자고 일어났더니 네가 안 보여서. 어디 갔어? 베이비까지 데려가고.”

    “……엄, 배고파서 버거 좀 먹으러 왔어. 형이 없는 동안 차를 쓰는 게 습관이 돼서 그냥 가지고 나왔네.”

    “네가?”

    “왜, 그럼 안 돼? 나도 식성이 좀 바뀌었나 보지.”

    “뭐, 그럴 수도 있지. 네가 드디어 풀떼기를 포기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도 바비랑 한잔하러 나왔어. 너도 올 건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나는, 난 됐어. 괜찮아. 둘이 마셔.”

    “그래. 우린 좀 늦을 것 같은데 너도 적당히 들어와.”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이 입을 빠져나간다. 딘은 바비가 눈썹을 치켜세우는 것을 곁눈질했다. 그래도 거짓말을 멈추진 않았다. 딘이 확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실 중 하나는 샘 윈체스터가 채식을 포기할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샘이 이 늦은 시간에 샐러드도 아니고 버거를 사 먹으려고 임팔라까지 몰고 나간다고? 거짓말을 해도 좀 그럴듯하게 해야 믿지, 이건 뭐 수상한 냄새가 나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예 무슨 수를 꾸미고 있다고 네온사인을 달고 다니는 편이 덜 의심스럽겠다.

    “내가 앤 줄 알아? 끊을게.”

    “그래. 아침에 보자.”

    난 너를 이렇게 키우지 않았다, 새미. 속으로 한숨을 삼킨 딘은 적당히 전화를 끊었다. 더 전화를 해봤자 날이 바짝 선 투로 말이 나갈 것이 분명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게냐? 샘은 어디 있대고?”

    “거짓말은 샘이 먼저 했어요. 아무리 4개월 동안 못 봤다고 해도 그렇지, 그 녀석이 어디 이 시간에 차까지 끌고 가서 버거를 사 먹을 녀석이에요?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꾸면 제가 진작 그놈 머리를 스포츠로 깎아버렸을 거예요.”

    “그렇다고 너까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지.”

    “그렇긴 하지만……. 됐어요. 새미 녀석은 계속 반대했으니까 저희가 지금 천사 낯짝을 보러 간다고 하면 당장 달려와서 막을 거예요. 지금은 샘과 말씨름할 시간 없어요. 빨리 천사인가 뭔가 하는 놈이 대체 뭐 하는 개자식인지 알고 싶다구요.”

    “정말 괜찮겠냐, 딘?”

    “진짜 괜찮을 거예요.”

    바비는 한숨을 쉬면서도 미리 알아봐 둔 헛간으로 계속 차를 몰았다. 샘의 고집은 신이 와도 꺾을 수 없다는 걸 둘 다 잘 알았다. 딘도 바비를 따라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통화 내내 물과 샐러드만 찾던 무스는 어디로 갔냐는 말이 목구멍을 간질였다. 괜히 말꼬리를 잡히고 싶지 않아 혓바닥을 깨물어 참았지만, 찜찜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버거를 먹으러 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하면서 하고자 하는 일이 도대체 뭘까. 뭔진 몰라도 이렇게 뒤에 숨어서 할 일이면 결과가 좋진 않을 텐데.

    하지만 그 문제는 나중에 처리하기로 하고, 딘은 핸드폰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샘에게 말한 것처럼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때였다. 예를 들면, 천사는 대체 무슨 볼일로 딘 윈체스터를 구원했는가? 도대체 왜 영매의 눈을 태우고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채 주변을 부수는가? 천사는 도대체 어떻게 죽이는가? 같은 문제 말이다.

    그의 무덤 주변과 그가 거쳐온 주유소, 모텔이 어떤 꼴이 났는지 생각하면 피가 식었다. 손가락 하나 대보기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천사가 그를 지옥에서 꺼내왔다면 다시 지옥으로 처박을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딘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는 대신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두드리면서 물었다.

    “바비, 천사를 죽일 수 있을까요?”

    “지금 와선 너무 늦은 질문인 거 아니냐?”

    바비가 눈썹을 들어 올리면서 딘을 곁눈질했다. 딘은 답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노인은 다시 도로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어디에도 천사가 실재한다는 자료가 없어서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는지도 오리무중이더구나. 모든 괴물에게 먹히는 건 다 가져왔으니 행운을 바라는 수밖에.”

    “역시 그렇겠죠?”

    “그래. 하지만 난 되도록 일이 그렇게 풀리질 않았으면 한단다. 얘야, 너에게도 한 번쯤은 좋은 일이 일어나야 수지타산이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니?”

    “그거야말로 글쎄요 밖엔 할 말이 없는 질문인데요.”

    “넌 옛날부터 너무 너한테 엄했어. 조금 더 좋게 봐줘도 좋을 텐데 말이다.”

    “적어도 그건 할 말이 있는 말이네요.”

    녀석, 하고 바비가 코웃음을 쳤다. 사이드미러로 전해지는 눈길에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지 모르는 딘이 아니다. 그러나 딘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바비의 말을 듣고 수긍할 수 없었다. 지옥의 고문대에 오른 영혼들에 따듯함을 보여주지 않은 그가 따듯함을 받을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딘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느 새부터인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비가 라디오 채널을 옮겼다. 때 이른 폭풍이 왔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과연, 시꺼먼 먹구름이 지평선 근처를 뒤덮고 있었다. 저 먹구름은 폭풍의 시작을 알리는 가브리엘의 나팔 같은 것이렷다. 우연의 일치인지 헛간은 마침 먹구름이 드리운 방향에 있었다. 어쩐지 심장이 따끔거렸다. 어깨의 화상 자국도 욱신거리는 것 같아, 그는 어깨를 꾹 쥐었다.

    라디오 진행자가 폭풍이 금세 지나갈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는 당부를 덧붙였다. 딘은 픽 웃음기 없는 웃음을 뱉으며 라디오를 껐다. 어차피 바비는 운전 중엔 라디오를 듣지 않았고, 그는 음악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트럭은 고요히 빗속을 달렸다.

     

     

    헛간은 생각보다 작고 넓었다. 언젠가 TV에서 재방송으로 봤던 《닥터후》라는 드라마에서 타디스라는 우주선을 설명할 때 썼던 묘사 그대로였다. 딘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묘사가 신기해서 기억에 남은 거지, 딘이 샘 같은 너드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그냥, 모텔에서 시간을 죽이는 동안 TV에 나오는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스타워즈, 그리고 스타트렉 시리즈를 봤을 뿐이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 미국인이 얼마나 된다고.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까, 딘 윈체스터는 너드가 아니었다. 절대로.

    바비와 딘은 헛간에 도착하자마자 벽과 바닥에 그들이 아는 모든 문양을 그렸다. 세계 모든 신앙과 종교의 덫과 부적들, 액운을 막고 악마를 가두며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들이었다. 천사에게는 얼마나 통할지 알 수 없었지만, 조금도 준비해두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들이 쫓는 존재가 천사라고 확실히 판명된 것도 아니니까. 엘로 끝나는 이름과 카스티엘이 남긴 흔적을 바탕으로 천사라 추측할 뿐이지, 실제로는 아자젤과 같이 강력한 악마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벽과 바닥을 온갖 문양으로 뒤덮은 다음에는 바비와 샘이 고서와 로어를 뒤지고 뒤져 찾아낸 천사 소환의식을 치르는 것뿐이었다. 딘이 트럭의 트렁크에서 무기를 꺼내오는 동안 바비는 청동 그릇에 소환에 필요한 재료를 담았다. 딘은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기 힘든 말린 허브들과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액체, 그리고 무언가의 가루였다. 그것들이 전부 우연히 트럭이나 임팔라 안에 있었을 리는 없으니 바비가 따로 준비해온 것이리라.

    “말뚝, 철, 은, 소금, 칼. 우리가 아는 모든 괴물이란 괴물은 다 죽일 수 있게 준비해뒀어요.”

    딘이 무기를 손에 잡기 쉬운 순서로 테이블에 늘어놓은 것을 보여주자 바비는 석연치 않은 얼굴을 했다.

    “여전히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구나.”

    “처음 열 번 정도는 그렇게 말씀하신 거 들었어요. 이제 그만 시작할까요?”

    바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딘은 테이블 위에 앉아서 순진무구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바비는 “애도 아니고.” 하고 중얼거리곤 딘의 반대편 테이블에 놓인 청동 그릇 앞에 섰다. 그리고는 그릇 안에 무언가의 가루를 뿌렸다. 그러자 그릇 안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딘은 눈썹이 이마가 닿도록 추켜올렸지만, 바비는 예상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주문을 읊었다. 아주 오래된 고어였다. </spanstyle="font-family: kopubworldbatang; text-indent: 1em;>고대 그리스어 같기도 했고 히브리어 같기도 했다. 어쩌면 천사의 언어라는 에녹어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라틴어는 확실히 아니었다. 라틴어만큼은 딘도 확실하게 듣고 읽고 말할 수 있었다. 샘 같이 머리가 좋진 못해서 쓰는 건 무리지만, 그 정도는 했다. 그의 인생엔 빌어먹을 악마놈들이 아이스크림 트럭만큼이나 자주 나타났다. 라틴어로 된 퇴마 주문을 몰라서야 살아남을 수 없었다.

    타닥타닥 타는 소리와 함께 계속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온갖 해괴한 풀과 액체를 집어넣은 것치고는 냄새가 매캐하지 않았다. 오히려 청량한… 향이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민트 향? 치약 향? 딘은 다리를 번갈아 흔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스티엘인지 뭔지가 천사라더니, 소환할 때부터 뭔가 거창하다. 마녀를 찾거나 악마를 불러낼 때는 숨쉬기조차 버거운 악취가 나는데 말이다.

    안에 든 재료가 전부 탔는지 조금 후에 연기가 사라졌다. 청동 그릇 안을 들여다본 바비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그릇 옆에 앉았다.

    “다 된 거예요?”

    “그래.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

    “얼마나요?”

    “꼭 자동차 뒷자리에 앉은 애처럼 구는구나.”

    “그냥, 궁금하잖아요. 언제 나올지 알면 공격하기도 쉽고.”

    “아쉽지만 나도 천사가 언제 튀어나올진 모른단다.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그게 최선이에요? 진짜로요?”

    “그렇대도.”

    바비가 모자를 매만지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딘은 뭐라고 한마디를 더 얹으려다가 현명하게 입을 다물었다. 무뚝뚝한 양반이 이만큼이나 말을 맞춰준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괜히 딘은 정성껏 진열한 무기 중 가장 가까이에 둔 루비칼―더 나은 이름이 없어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을 만지작거리면서 입을 뗐다.

    “그나저나 아까 나가셨을 때 재료를 모으셨나 봐요? 소환에 반대하신다더니.”

    “그래. 너희들 윈체스터 고집이 어디 보통 고집이냐? 어차피 하게 될 거면 미리 준비해두는 편이 덜 번거로울 것 같아서 말이다. 그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그 덕을 보는 게지.”

    “아저씨가 최고예요. 제가 이 말 했던가요?”

    “허, 그걸 꼭 말로 해야 내가 알 것처럼 말하는구나. 난 너희가 코흘리개일 때부터 최고였는데.”

    가끔 바비의 퉁명스럽고 사나운 기세에 묻힌 예리한 유머가 그 가면을 깨고 밖으로 삐져나올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 그때였다. 딘은 슬쩍 웃는 바비를 따라 킥킥 웃었다. 팽팽하게 조여들었던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그는 칼 손잡이를 한 번 세게 꾹 쥐곤 원래 자리에 돌려놨다.

    “천사가 빨리 오면 좋겠네요.”

    바비가 건너편에서 대답으로 흠, 하고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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