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내/캐스딘] 보내지 않을 편지

    2017. 10. 10.

    by. 시두스

     

    *시즌 7 후반을 배경으로 합니다
    *캐스가 양봉하고 어쩌고 하는 도중에 썼으면 했습니다​ ;ㅁ; 연옥에서 보여준 찌통을 잊을 수가 없서..!
    *캐스가 지옥에서 딘을 구해올 때 기억을 습득했다는 설정을 넣었습니다. 혹시 원작과 설정충돌이 일어나면 알려주세요!

     

     


     

     

    안녕, 딘. 카스티엘이다.

    ……이 문장을 몇 번이나 고쳐 썼는지 모르겠군. 지겹도록 상투적인 말이지만, 우리의 관계에서 이 이상 적절한 인사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무엇으로 시작하였던들, 네가 기쁘게 시작할 수는 없었겠지. 딘, 네가 허튼 인사치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편지라 함은 보통 이렇게 시작하는 것 같더군.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겠다. 이 단계에서 해야 할 것은 끝마친 것 같으니까.

    너는 내 말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굳이 기울이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이 말을 해야 한다. 너는 다르다, 딘. 네가 그 사실을 늘 부정해왔다는 것을 알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너는 다르다. 지금까지 내가 지켜본 바가 그랬고, 앞으로도 너는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다름이 나의 죄책감을 들추는 것임을 너는 모를 테지. 딘, 혹시 네 어깨에 얹힌 그 무거운 짐들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내 짐작건데 그저 네가 짊어진 운명으로 치부하며 네 시야에서 치워버렸을 뿐이겠지. 그러나 너는 의문을 가졌어야 했다. 왜냐하면, 너를 죽일 듯이 누르는 것들은 아마 천사인 내가 짊어져야 할 것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게는 설산에서 구르는 눈덩이처럼 시간이 갈수록 무거워진다는 사실을, 너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너와 내가 바랐던 이상과 현실이 달랐던 것처럼.

    딘, 아마도 너는 내가 너를 위해 했던 일을 전부 알지 못할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네가 자신을 위했을 것이라 비난을 퍼부어도 할 말이 없게 되었지만. 욕을 들어도 싸지. 그런데 염치불고하게도, 나는 네가 내 노력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줬으면 한다. 네가 샘에게 그러듯이. 이 ‘감정’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네가 그 여배우와 나눈 일의 범주에 들어갈지도 모르지. 알다시피 나는 그런…… 감정에 서툴다. 완전히 다르다고 해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이제야 밝혀서 미안한 일이지만, 너를 지옥에서 꺼내오는 순간 기억들이 흘러들어왔었다. 내가 용서받고 싶은, 그러나 그러지 못할 리스트 어딘가에 이 일을 넣어주겠나?

    음, 사족이 길어졌군. 미안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점은 나아지지 않는구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다. 이런 부분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하지. 그게 생각만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딘, 혹시 내가 이 편지를 쓰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나? 만일 이것이 정말 네 편으로 간대도 너는 읽지도 않고 버려버릴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을 알기에 묻는다. 이 편지의 목적은 무엇일지에 대해 말이다. 너로서는 내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어 네게 해답을 떠넘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네게는 푸념처럼 들릴지 몰라도,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안다. 너희가 한 번 그것을 막았지. 그러나 아름다운 것들, 벌레, 꽃, 새 같은 것들이 다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천사들을 ‘열 받게’ 만든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지. 라파엘은 또 다른 신이 되어 성경과는 또 다른 종말을 일으키려 했어. 죽음과 운명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지만, 중립을 지키지도 않았다. ‘영혼’은 그들에게 있어 결정적일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었거든. 그들에게는 그 새로운 종말이 불꽃놀이와 다름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네 말을 빌리자면, ‘미쳐 돌아간’ 것은 그 중압감 때문이었다. 라파엘을 막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은 나와 내 형제 몇몇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은 간신히 종말을 피한 세계와 심신이, 심지어는 영혼까지 지쳐버린 형제였고, 그나마도 한 명은 루시퍼와 갇힌 채였지. 나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딘. 잠시라도 너를 부를 것을 고려했지. 하지만 너는 샘의 부탁을 충실히 따랐어. 몸을 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 그러니 부디, 내가 그것을 깨뜨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는 하지 마라. 네가 그동안 짓지 못한 여러 표정을 나는 여러 번 목격했으니까.

    결국, 나는 우둔하게 섣부른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렇게 되었지. 라파엘을 막았지만, 더 큰 재앙을 부른 거야. 이제 인정한다. 난 용서 받지 못할 짓을 했고, 그것을 씻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 굳이 방법을 찾는다면 내가 부른 것들이 원래 있던 곳에 가는 길뿐이겠지.

    딘, 수백 번의 편지를 쓰고 지우는 동안, 여기에 용서라는 말은 그리 좋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그 어떤 말도 어울리지 않을 거야.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설명하기에는. 하지만 죄책감이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아마 너에게 느끼는 것이 절반쯤 되겠지. 네게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네 곁에서, 네가 부를 때면 언제든지 왔다는 사실을 무기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작 그 무기를 휘두를 자격이 없었다. 늘 뒷걸음질 쳤으면서 용기 있게 맞섰다고 자랑한 꼴이었지. 

    하지만 이미 얼굴을 들 명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네가 필요하다. 너는 이유를 묻겠지. 왜? 너는 물을 것이다. 외로워서? 아니. 유대관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너를 잃고 난 후 외로움에는 익숙해졌다. 그것으로 더 마음 상할 일은 없을 거야. 내 대답을 들은 너는, 특유의 찡그린 얼굴을 하고 다시 물을 것이다. 그럼 뭔데? 사실 나도 확신할 수 없다. 처음으로 관계를 맺은 인간이라서일까. 아니면 네 도움을 받은 일이 바다에 속한 물방울의 수만큼 많아서일까. 이 모든 사실에 눈을 감았지만, 너와 샘과 있으면서 생긴 ‘본능’은 천사로서의 이성을 뛰어넘어 네게로 향하고 있다. 사막을 헤매며 오아시스를 바라는 사람처럼.

    말이 길어졌군. 늘어놓을 말이 아직 남아있지만, 여기서 그만두겠다. 펜을 더 붙잡고 있어봤자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밖엔 안 될 것 같거든. 편지는 원하는 바만 짧고 간결하게 쓰는 것이 좋다더군. 이미 충분히 그 말을 어기고 있지만.
    그러면…… 나중에 다시 보지.

     


     

    카스티엘은 깃펜을 내려놓았다. 수많은 종이와 함께, 메그에게서 –그 경위를 굳이 묻지는 않았다- 받은 것이었다. 볼펜이나 연필로는 어쩐지 이런 고해성사를 적는 데에 맞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별개로 연필이 종이에 맞닿으며 사각거리는 소리는 좋아하긴 했지만. 그는 의자를 뒤로 조금 젖혔다. 창밖에서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거세게 들렸다. 새로운 여왕별이 그녀의 둥지를 떠나 새 둥지를 찾는 여정에 나설 모양이었다.

    그는 잉크로 여기저기가 물든 손바닥을 보았다. 그리고는 막 써낸 글을 읽었다. 이미 셀 수도 없이 반복하느라 무슨 내용인지 암송할 수도 있을 정도였지만, 그는 끈기 있게 읽어 내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어 차례 반복한 그는, 종이를 구기고, 결국엔 뒤로 던져버렸다. 이번에도 보내질 편지가 아니었다는 듯. 종이뭉치는 거기가 원래부터 정해진 자리인 마냥, 산처럼 쌓인 종이 더미 윗부분에 얌전히 자리 잡았다.

    카스티엘은 새 종이를 꺼냈다. 그는 빈 종이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깃펜에 잉크를 묻혔다. 결국엔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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