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내/캐스딘] 첫 번째 연성

    2017. 10. 10.

    by. 시두스

    키워드: 원작 배경, 시즌 5 어드메, 자각 못한 딘

    분량: 공백포함 약 5,200자

    캐스딘을 파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썼던 글을 끄집어내봤습니다... 22년 기준 8년전에 쓴 글이라 진짜... 깜짝 놀랄 만큼 유치하지만 이런 글도 먼지가 쿰쿰히 쌓인 지하실에서 나와 거미줄도 털고 햇빛도 봐야하는 법이겠지요

     

     


     

     

    1

     

    농담도 돌려 말하기도 통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전혀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놀려도 놀린 줄을 몰라서 발끈하지도 않았으니까. 목석이라는 말에 자신은 엄연히 살아있는 육체에 있으며, 애초부터 돌과 나무는 함께 할 수 없다는 말만 늘어놓았다. 아버지가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나? 딘은 그 모든 것이 웃겼다. 캐스에게 한 말은 사실이었다. 샘과 보낸 지난 몇 년보다는 그와 지낸 몇 시간이 훨씬 재밌었다. 동생과 계집애니 병신이니 주절거리는 것도 물론 재밌긴 했지만, 캐스는…….

    캐스는 뭔가 달랐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그러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는 아직까지 스트릿 클럽에서 봤던 캐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걸 생각만 하면 당장에라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아버지가 나갔다느니, 금방 돌아오실 거라느니 하는 말로 창녀를 설득시키려고 한 점이 특히.

    물론 천사라고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들으면 무척 화를 낼 테지만, 적어도 딘은 그렇게 생각했다. 융통성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에 대한 지식은 약에 쓸래도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여기로 가야한다던가, 오밤중에 전화해서 달콤한 잠을 깨운다던가하는 단점들이 종종 보이곤 했다. 하지만 캐스는 그것들을 상쇄할만 했다. 그 행동들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자신이 뭔가를 잘못한 건가 다시 생각한 것도 여러 번이다.

     

     

    2

     

    딘은 종종 캐스를 보면 알 수 없는 기분이 들곤 했다. 멍하고 또 멍한. 샘을 볼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것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었다. 다만 직감적으로 이것이 흔히 말하는 지옥보다는 천국에 가까웠기 때문에 –요즘 천사라고 하는 것들의 작태를 보면 천국이라는 단어는 쓰고 싶지 않지만- 내버려두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처음엔 이것이 동정심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캐스도 결국 종말에 맞서서 싸우고 있는 셈인데다 ‘아버지’를 간곡하게 찾고 있었다. 딘은 캐스가 아버지는 반드시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는 희망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과거의 그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쪽은 단순히 위험에 처한 것뿐이고 그쪽은 과도하게 신성하고 보통 적극적으로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달랐지만, 애초에 인간과 천사라는 갭도 크니 아버지도 급이 다를 수밖에―

    “딘?”

    “어……. 어?”

    “뭘 그렇게 딴 생각을 해? 듣고는 있어?”

    “응. 어, 뭐, 대충.”

    “집중 좀 해. 뭐가 그렇게 산만해?”

    “알았다고.”

    “어제 너무 마신 거 아냐?”

    “어젠 별로 마시지도 않고 잤거든?”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어제 별 일도 없었던 데다가 그리 취해보이지도 않더군.”

    “그건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말이네요. 형은 엄청 취해도 멀쩡해보인다니까요?”

    “어떻게?”

    “몰라요. 그러니까 문제죠.”

    “흐음…….”

    “뭐, 뭐! 내가 돌아온 탕아도 아니고, 샘 자꾸 그럴래?”

    “어느 의미에서는 돌아온 게 맞는 거…….”

    “그 얘기는 집어치워. 너한테서는 절대 듣기 싫거든.”

    “알겠다. 그러면 한 가지만 묻지. 어제 했던 말은 그럼 다 거짓인가?”

    “어제? 어제 내가 뭘?”

    “어제 나한테 한 말이 하나 있다. 잘 생각해봐라.”

    “친구, 장난치지 말고.”

    “난 장난을 친 적은 평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렇게는 보이지!”

    “그런가? 네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지.”

    카스티엘이 딘을 바라보았다. 딘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런 말을 꺼낸 걸 보면 어제 무슨 말을 듣긴 들었을 텐데, 불안하게도 자신이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전혀 기억 안 났다. 사실을 말하자면 대화는커녕 모텔 방에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를 정도다.

    딘은 미간을 찌푸린 채 카스티엘의 시선을 받다가 그 파란 눈동자가 불길하게(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을 보곤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캐스에게 무슨 말을 했든 새파란 눈동자를 보고 있다간 없는 말도 술술 내뱉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전화를 끊어버렸을 때도 그랬다. 직접 찾아와서 왜 그랬느냐고 묻는데, 도저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어서 결국 불어버린 것이다. 여자와 있었노라고. 나중에 생각해보면 샘에게 그러듯 사냥을 하고 있었다거나, 급한 일이 생겼다거나 변명할 거리는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전 그랬던 것처럼 캐스의 파란 눈동자가 빛나자마자 사실을 토로해버렸다. 천사의 눈가가 샘 못지않게 처량 맞아질 수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천사 눈알에는 뭐 특별한 광선이라도 있는 건지.

    딘은 옆에서 빙글빙글 웃고 있는 샘에게 인상을 쓰고는 맥주병을 입가로 가져갔다. 결국 샘은 끅끅 웃음소리를 내면서 어깨를 들썩였다.

     

     

    3

     

    “너 무슨 생각이야?”

    “뭘?”

    “무슨 헛짓거리냐고. 사냥? 캐스랑 같이? 미쳤어?”

    “왜 그래. 천사니까 사냥이 수월해질지 누가 알아? 도움이 안 된다고 해도 숫자가 세 명인데 전보다는 쉽겠지.”

    “돌았냐? 난 쟤가 총 잘못 쏜 거 맞아서 골로 가고 싶진 않거든?”

    “그래봤자 암염탄인데 뭘 그래.”

    “가끔 제대로 탄약 들어간 것도 쓴다고!”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생각해봐, 딘. 우리는 최초로 천사와 사냥한 형제가 된다니까?”

    “새미. 진지하게 말하는데 그건 헤까닥 돌은 놈들이나 좋아할 거라고! 젠장!”

    “형은 왜 이렇게 캐스를 싫어해? 지옥에서 꺼내줘서?”

    “그 얘기는 왜 꺼내? 그리고 싫어하는 거 아니거든!”

    “그럼 뭔데?”

    “그냥, 그냥, 그…….”

    “그냥 뭐.”

    “그, 그……. 아 됐어! 그냥 됐어! 그냥 아니야!”

    “형 취했어?”

    샘이 피식거린다. 딘은 웃는 샘의 팔을 주먹으로 퍽 때린다. 샘이 끅끅대면서 팔을 비볐다.

    “그 꼴 보니까 네가 더 취한 것 같다.”

    딘은 빈정거리곤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캐스를 사냥에 데려가면 확실히 수월할 것 같다. 그리고 최초로 천사와 사냥한 형제라는 타이틀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게 붙으면 미친 듯이 좋을 것도 같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가지고 희희낙락할 때가 아니었다. 요한 계시록에 나온 징후들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막지 않으면 세상이 반쪼가리도 남지 않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고작 멋진 타이틀 따위에 홀릴 만한 배짱은 없었다. 정확히는 홀릴 만큼 바보는 아니라고 할까.

    딘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어깨를 건드리는 손길에, 으레 샘이겠거니 뒤를 돌아보았다가 기절할 뻔했다. 비슷한 눈높이에서 파란 눈동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야, 이! 놀랐잖아! 사람 심장마비로 죽일 일 있어? 언제 나온 거야?”

    “조금 전에. 아무래도 같이 다니는 것은 당분간 현명한 생각이 아닌 것 같아서 의견을 전해주러 왔다.”

    자신이 카스티엘을 거절하면 거절했지, 카스티엘이 자신을 거절하는 상황은 상정하지 않은 딘은 고백하기도 전에 차인 기분이 들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현명한 생각이 아니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왜요? 또 형이 뭘 잘못했나요? 형. 얼른 캐스한테 사과해.”

    “내가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미쳤냐?”

    “형이 문제인 거잖아.”

    “이게 진짜!”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싸울 것만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카스티엘은 그로서는 상당히 (어떻게 봐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다급한 표정으로 형제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니.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딘, 너에겐 아무런 문제도 없어. 이건 그저, 인간이 가지는 종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문제다. 나는 필요에 의해 움직이기에 시간을 따지지 않지. 하지만 너희들 인간은 밤에 숙면을 취해야만 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질 않나. 같이 돌아다니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나는 밤 시간을 활용할 수 없어진다. 내가 해야할 일과 조사할 것들을 고려하면 효율이 떨어지지.”

    기나긴 설명을 끝낸 카스티엘은 형제가 다시 서로의 목을 향해 달려들기라도 할까 봐 둘을 번갈아 보았다. 다행히도 긴 설명에 맥이 빠진 딘이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물어서 싸움이 재개되지는 않았다. 딘이 잠시나마 얌전해진 사이, 샘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밤이라고 딱히 잘 자는 것도 아니지만……. 안 된다면 할 수 없죠. 결국 형 때문이긴 하네.”

    “내가 쟤 일 시켰냐? 왜 나한테 그래?”

    “사실 네가 첫 번째 봉인을 깼으니, 엄밀하게 말하면 맞다고 생각한다.”

    “거 봐.”

    “그래. 내가 개자식이지.”

    양쪽에서 집중포화를 맞은 딘이 짜증을 내면서 바닥을 발로 찼다. 떠돌이 개가 그 모습을 보고 왕 짖었다. 샘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딘은 슬슬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것을 느끼고 다시 모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샘도 그를 더 놀리기 위해서 쫓아 들어가고, 밖에 남은 것은 캐스와 개뿐이었다.

    카스티엘은 짖는 개를 흘끗 보았다. 그러자 개는 자신이 언제 짖었냐는 듯, 길이 잘 든 반려견처럼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그는 발치까지 다가와 배를 까고 누운 개의 배를 쓰다듬었다. 개가 기분이 좋은 듯 그르렁거렸다. 카스티엘은 반 쯤 감긴 개의 눈이 초록색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우연의 일치에 놀란 그가 손을 멈추자, 개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차장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는 사라져 가는 개를 느긋이 쳐다본다. 아직도 손은 개의 열로 따듯했다.

    “사람도 조금은 동물처럼 솔직해졌으면 좋겠군.”

    캐스는 안에서 또 한바탕하는 소리를 들으며 중얼거렸다. 일이 이렇게 되어 결국 듣지 못한 답이 있었다. 어제 딘은 남자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씩 웃었는데, 캐스는 결국 무엇을 안 해봤다는 건지, 그 멋쩍은 미소는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빽빽 고함과 함께 쏟아지는 답변을 들어봤자 그리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그는 저번에 딘이 끌고 갔던 곳을 기억했다. 길을 잃은 사람들과 딘의 미소는 꽤 흡사했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캐스는 흐음, 소리를 내면서 방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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