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오/한니발딘] Big Mistake

    2023. 11. 20.

    by. 시두스

    키워드: 슈퍼내추럴/한니발 크로스오버, 프리-시리즈, 사건 수사, 상담

    분량: 공백포함 약 8,300자

    예전에 썼던 한니발딘 글을 발굴해서 수정하고 업로드 해봅니다...

    한니발 내용하고 설정을 다 까먹어서 이게 한니발이 맞는 건지 모르겠네요ㅋㅋㅋ

    언제나처럼 재밌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3

     


     

     

    딘은 커다란 소파에 파묻힌 몸을 불편하게 뒤척였다. 미세한 동작에도 건너편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남자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달라붙어 왔다. 딘은 남자의 눈이 먹이를 발견한 매처럼 희번덕거리는 것을 보았다. 기분 탓인지 처음 악수했을 때부터 맡은 피 냄새가 짙어진 것 같았다.

    계피와 여러 허브로 쇠 비린내를 잘 감추었으나 숙련된 코를 피하지는 못했다. 설마하니 상담사가 환자의 외과수술까지 도맡아 하진 않을 텐데, 남자는 혈향을 마치 고급스러운 향수처럼 몸에 두르고 있었다. 매일 피로 샤워라도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딘이 아는 한 피부에 피 냄새가 밸 만큼 피와 가까우며 그 냄새를 숨기는 법을 잘 아는 존재는 모 아니면 도였다. 생명을 살리거나 생명을 죽이거나.

    혼자 사냥하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사냥꾼으로서 살아온 것은 벌써 이십 년이 넘었다. 딘은 그간 길러온 제 감을 그 무엇보다도 깊게 신뢰했다. 그의 목숨을 수도 없이 구한 동료인 직감은, 지금 그에게 눈앞의 남자는 틀림없이 후자에 속한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딘도 쉽사리 직감의 결정을 따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조사하고 이 상담실에서 직접 확인한 바로는, 남자는 완벽히 인간이었다.

    깊게 베인 피 냄새를 맡자마자 딘은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모든 수단을 다 시도했으나 믿기지 않게도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늑대인간인가 싶어 실수인 척 은팔찌를 살갗에 대자 남자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괜찮은 디자인이라고 칭찬했고, 인간의 살맛을 본 요정인가 싶어 순철로 만든 반지를 가져다 대도 멀쩡했다. 웬디고가 이렇게 멀쩡하게 생겼을 리는 없고, 셰이프시프터인가 하면 이 상담가는 잘만 놋쇠 촛대를 사용했다.

    상대방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을 법한 방법을 모두 사용한 딘은 궁지에 몰린 기분이었다. 그 역시 평범한 인간 역시 다른 인간에게 충분히 괴물 같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인간이 꺼질 수 있는 바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 아니던가?

    “존 스미스 씨.”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딘은 불쑥 내면을 침범한 감정이 결여된 목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다. 딘은 허둥지둥 상담가와 눈을 맞추었다. 한니발 렉터 박사는 소파 옆 트레이에 펜과 노트패드를 내려놓고 다리를 꼰 무릎 위에 깍지를 낀 손을 올려두고 있었다.

    “당신과 제 시간이 덧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당신을 돕고 싶은 제 입장에서는 당신이 이 귀중한 시간에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만큼 애석한 행위도 없을 겁니다. 말씀을 고르시는 것도 좋지만 이 자리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말을 꺼내어 놓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저는 이를테면 원석을 가공하는 사람이니까요.”

    부드럽게 타이르는 목소리가 어쩐지 자신을 꾸짖는 것만 같아, 딘은 어색하게 뒷목을 긁적이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는 손목시계를 힐끔거렸다. 체감상 한 시간은 넘게 있었던 것 같은데 방에 들어온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 아…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을 좀 하느라요. 그,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조금 쑥스러워서……. 보통 이렇게 마음속 깊이 묻어둔 얘기는 잘 늘어놓지 않아서 어색하네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잘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까. 음, 이렇게 합시다. 제가 스미스 씨를 존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괜찮으십니까?”

    “예. 물론이죠……. 어…, 그러니까 렉터 박사님?”

    “아닙니다. 공평하게 당신도 저를 한니발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좋아요. 하, 한니발 씨. 어…… 이렇게 부르니 정말 어색한데요.”

    “시도는 하셨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한층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드는군요. 존. 당신은 어떤가요. 제가 아까보다는 친밀하게 느껴집니까?”

    “음. 글쎄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요.”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속도보다는 천천히, 꾸준하게 한 발자국씩 내딛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갑자기 마음을 여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특히 당신 같은 특별한 인격체에겐 더한 일이겠죠.”

    특별한? 신발코를 내려다보던 딘은 그 단어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렉터 박사, 아니, 한니발은 그런 그를 흥미롭다는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현미경 아래에 놓인 듯한 기분이 든 딘이 부러 턱을 치켜 세우고 한껏 방어적인 몸짓을 취하자 박사는 무엇이 만족스러운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옆으로 치워둔 필기구를 다시 집어 들었다.

    “자, 그럼 이제 질문으로 돌아가 보도록 할까요. 처음부터 시작하죠. 당신이 저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죠, 존?”

    “……이 나이가 돼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동생과 일이 좀 있어서요.”

    “동생분과 문제가 있으시다고요. 실례지만 동생분의 개인적인 신상정보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신상? 준비된 대본을 읊던 딘이 몸을 살짝 틀었다. 헌터 생활에 치를 떨며 캘리포니아로 떠난 괘씸한 동생을 팔아먹을 생각은 있었지만, 신상까지 넘길 생각은 없었던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신상이라면요?”

    마주쳐오는 한니발의 시선이 따갑다. 딘은 자신이 당황해서 동공을 떨거나 얼굴이 붉어지는 등 초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헤아려보지만, 거울도 없는 곳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나이와 성별만 알려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유의미한 침묵 뒤에 한니발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이와 성별. 그 정도는 괜찮을 거다.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딘은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다가 사실을 이야기했다. 상담사에게 거짓말을 과하게 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거짓말을 할수록 터뜨리기 좋은 피냐타가 되어갈 뿐이니까.

    “올해 생일은 아직 안 지났으니까 스물하나에, 남자요. 좀 계집애 같긴 하지만요.”

    “그렇군요. 좋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짧은 대화를 마친 한니발은 노트에 무엇인가를 적었다. 특기할 만한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늘 하는 위장 수사―그는 가짜 신분증을 내미는 일을 이렇게 불렀다―임에도 불구하고 딘은 이상할 정도로 혀가 바짝 말랐다. 평소보다 배는 긴장한 것 같았다. 나이와 성별을 알려줬을 뿐인데 왜 이 년 전에 제멋대로 집을 나가서는 연락이 뚝 끊긴 동생을 범죄조직에 팔아넘긴 기분이 드는 걸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 정도 정보로는 누구도 찾을 수 없다. 게다가 딘은 지금 미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을 섞은 가명을 쓰고 있었다. 뒤를 캘 수 있을 리가 없다.

    동요를 감추려고 딘은 커피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집었다. 긴장을 풀어준다며 한니발이 직접 끓여온 허브티였다. 무슨 종류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향은 좋았다. 그가 어렵게 한 모금을 마시자 한니발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느긋하게 다리를 바꿔 꼬았다.

    상담, 더 못하겠다고 할까? 딘은 이 웃기지도 않은 짓거리를 때려치우고 모텔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한니발과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괴물에게서 받는 공포와 엇비슷한 것이 등허리를 서늘하게 했다. 사람이 가축처럼 도륙된 뒤에 예술작품처럼 전시되는 엽기적인 살인 행각이 일어나지만 않았더라도 남자와 마주칠 일은 없었을 터였다.

    포식자에게 덜미를 잡힌 피식자가 된 기분이 든 딘은 불현듯 갈대밭 사이에 어느 그림을 따라 한 듯 치밀하게 배치된 시체를 떠올렸다.

    딘은 예술적이라고 하기에는 기괴하고 난잡하다고 하기엔 섬세하게 배치된 시체들의 소식을 듣고 볼티모어에 왔다. 신문에선 의도적으로 누락된 묘사를 실제로 봤을 때, 그는 웬만해선 끄떡도 없는 속이 뒤틀려 구토가 치밀었다.

    느글거리는 속을 혀가 데일 만큼 뜨겁고 맛없는 편의점 커피로 가라앉힌 딘은 다음으로 시체안치소를 들렀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절단되어 ‘수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지와 장기가 있던 부위를 확인한 그는 정교하게 잘린 단면을 보고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형언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해체되어 재배치된 시체와 정교한 단면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기사로 이 사건을 접했을 때 생각한 것처럼 살인의 목적은 포식이 맞았으나 범인은―그것이 무엇이든―딘이 내심 바랐던 것처럼 단순히 배가 고파서 이런 짓을 저지른 게 아니었다.

    그것은 피해자를 죽일 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었다. 그 말은, 그것이 살인의 행위 그 자체에서 쾌락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었다. 피식은 끔찍한 허기를 다스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인을 마무리하는 의식에 불과했다. 사슴 사냥에 성공한 사냥꾼이 사슴의 목을 베어 장식하듯이 범인은 사냥감의 신체를 섭취하는 것이었다.

    이건 더 질이 나빴다. 무고한 희생자를 낳는다는 점에선 같을지 몰라도 살아남기 위해 인간을 잡아먹는 것과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이 사실은 딘으로 하여금 인간을 범인의 범주에서 빼게 했다. 인간이 장난으로 다른 한 인간을 죽이는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한계에 몰리지도 않은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죽이는 건?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었다. 사전적으로 괴물이 아닌 인간은 처리하지 않는 그조차도 그런 인간은 괴물로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 만큼. 실제로 인간이 같은 인간을 잡아먹다가 진짜 괴물이 된 웬디고 같은 케이스도 있어서 더 그랬다.

    하루라도 빨리 이 괴물을 세상에서 제거하고자 딘은 평소보다 더 열정적으로 증거를 모았다. 그렇게 모은 모든 증거는 한니발 렉터, 혹은 그의 주변을 가리키고 있었다.

    딘은 그저 일의 배후가 같은 인간이 아니기만을 빌었지만…….

    “차 맛은 괜찮나요?”

    한니발은 충분히 시간을 주었다는 듯이 말했다. 딘은 깊게 숨을 내쉬면서 정신적으로 방어 태세를 가다듬었다. 상담가와의 대면을 이젠 더 미룰 수 없었다.

    “예. 맛있네요. 직접 차까지 끓여 주실 줄은 몰랐는데요.”

    “차는 대화를 조금 더 부드럽게 흘러가도록 돕죠. 동생분과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나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애인이나 학업과 관련된 문제뿐입니다만.”

    “학업과 관련이 있긴 합니다. 가족 사업을 때려치우고 대학으로 가버렸으니까―”

    마음을 단단히 먹은 딘은 한니발에게 반쯤 진실이 섞인 거짓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보조를 맞추듯 한니발이 질문을 하고 노트에 뭔가를 끼적였다. 그러면서 다른 이야기를 은근하게 재촉하는 것이다.

    성실한 상담가는 딘이 하는 모든 이야기를 정리했다. 워낙 성실해서, 딘은 아무 말이나 꺼내버렸다. 두서없이 십 년 전, 일주일 전, 심지어는 상담 시간 직전에 있었던 일까지 늘어놓다 보니, 대화가 얼추 마무리되었을 때쯤에는 딘 자신도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무척 긴 얘기를 한 듯한 기분이 들어 딘은 긴 한숨을 마지막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말하다가 지쳐보긴 또 처음이었다.

    그 모든 얘기를 들은 한니발은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수고했다고 말하고 잠시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딘이 제 말을 거역하고 방 밖으로 나가리라곤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그 긴 시간 내내 붙잡고 있었던 노트로 시선을 내렸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을 겨우겨우 억누르며 딘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서 사무실을 훑었다.

    천장에 닿는 높다란 책장들, 비쌀 것이 분명한 작가를 알 수 없는 그림이 걸린 액자 여러 개, 태피스트리, 카펫, 옅은 하늘색으로 도배된 벽. 평범했다.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러다가 한니발의 뒤에 있는 책상에 놓인 것에는 눈길이 갔다. 종이와 비슷한 것에 무언가가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딘은 저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오래 앉아있기 불편한가요?”

    딘의 이야기를 검토하던 한니발이 고개를 들었다. 딘은 어색하게 웃었다.

    “좀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이라서요.”

    “혈기가 넘칠 시기죠. 당신이 부럽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는 않겠습니다.”

    “저를요?”

    “당신이 부럽지 않을 이유가 없죠. 당신이 지금까지 한 이야기에 따르면 당신은 친절하기 그지없는 사람입니다. 비록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동생과 사소하지는 않은 다툼을 계속해서 겪으면서도 끈을 어떻게든 놓아버릴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니까요. 아버지와 함께 종종 여행을 간다고 했는데, 이 역시 저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입니다.”

    “……아버지요? 제가 그런 얘기까지 했던가요?”

    “오, 물론이죠. 꽤나 이야기에 집중하셨던 모양입니다.”

    “아마 이렇게 속마음을 터놓은 게 처음이라서 그럴 지도요.”

    “그렇다면 좋은 일이죠. 그렇게 마음을 여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거든요.”

    한니발의 말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지만, 딘은 딱딱하게 굳어가는 얼굴을 억지로 움직였다. 당황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큼 제 패를 전부 보여주는 일도 없다.

    한니발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딘에게는 꼭 사냥감에 대한 정보를 있는 대로 끌어모아서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노트와 펜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뒤쫓아 일어난 딘에게 앉아있으라는 표시로 손을 들었다. 그는 손에 쥔 것을 책상에 내려놓고 딘이 계속 지켜봤던 것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양피지였다. 가죽의 거친 표면에 총에 맞아서 쓰러진 사슴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딘은 손에 차오른 땀을 바지에 닦아냈다. 연필로 그려진 피가 표면 밖으로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책상에서 돌아온 한니발은 딘에게 그것을 건넸다.

    “계속 이것을 주시하시기에 가져와 봤습니다.”

    “어, 그러니까, 종이는 아닌 거 같아서요. 그냥 신기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군요, 요즘에는 쉽게 보기 힘든 물건이라는 것을 잊었군요.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랍니다. 종이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줘서 종종 사용하곤 합니다.”

    “네……. 그나저나 이건 직접 그리신 겁니까? 골격이나 근육이 상당히 자세한데요. 이만하면 삽화 작가로 전직해도 될 것 같아요.”

    “과찬입니다, 존. 저번 주에 사냥을 갔었거든요. 그때 피를 흘리면서 쓰러진 사슴이 눈에 밟혀서 스케치했던 것을 틈틈이 옮겨 그린 것에 불과합니다.”

    “사냥이라.”

    딘은 한니발이 유난히 ‘사냥’이라는 단어를 강하게 발음하는 것을 곱씹었다. 그만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걸까, 아니면 어떤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그는 다시 양피지 위에 누운 사슴을 보았다. 마치 그것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양, 서서히 식어가는 나약한 눈빛이 소름 끼치게 현실적이었다. 딘은 그것이 흘린 피냄새도 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른침을 삼키며 양피지를 되돌려준 딘은 저도 모르게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상담이 끝날 시간이 거의 임박해있었다. 딘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그럴 시간인가요?”

    내내 무표정을 고수하던 한니발이 처음으로 표정을 드러냈다. 아쉬움. 찰나에 불과했으나 딘은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순식간에 공포와 안도에 휩싸인 그는 발작적으로 터지는 웃음을 참으면서 말을 이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한니발.”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오래간만에 재밌는 이야기를 듣게 돼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즐거웠답니다, 존. 부디 다시 들려주길 바립니다.”

    “시간이 나면 그럴게요.”

    “좋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딘이 노골적으로 탐탁지 않다는 투로 답하자 한니발은 물론이죠, 하고 뱀의 비늘처럼 매끄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특별히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닙니다. 사실 당신이 뭔가를 해줬으면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저 식사 초대일 뿐입니다. 같이 저녁이나 했으면 좋겠는데요.”

    “……네?”

    딘이 입을 벌렸다. 저녁이라니? 둘이서? 체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한니발은 그런 딘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양피지를 책상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불편하시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오늘 저녁에 제집에서 만찬이 열릴 예정이었는데, 끝의 끝에야 초대객이 못 오게 됐다고 연락을 해왔거든요. 요리를 위해서 직접 공수해 온 식재료들을 못 쓰게 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답니다, 존. 마침 당신이 오늘 제 마지막 상담자였고 재밌는 얘기를 들려준 보답을 해주고 싶습니다.”

    “잠, 잠시만요. 그러니까 한니발 씨 댁에 초대하시겠다는 겁니까? 오늘 처음 본 저를요?”

    “조금 전에 말했듯, 불편하시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생각지도 못한 좋은 기회였다. 무의식적으로 아랫입술을 핥은 딘은 선량한 척을 하는 갈색 눈을 들여다본다. 그는 그 눈에서 사악한 기쁨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속에서 비명이 치밀었다.

    “존. 어떻게 할 거죠?”

    코트를 집은 채로 잠시 가만히 서 있던 남자가 그의 가짜 이름을 부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갈게요.”

    빨리 남자와 떨어지고 싶었지만, 사무실에서 소득이 없었던 만큼 집에 발을 들여놓을 기회를 차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먼 곳에 있나요? 차를 가지고 와서요.”

    “근처에 있기는 하지만, 차가 있다면 그걸 타고 가는 편이 좋겠군요. 다행히 차고가 비거든요.”

    “그것참 다행이네요.”

    “모쪼록 제 요리가 입에 맞으셨으면 좋겠군요.”

    한니발이 눈을 둥글게 접었다. 딘은 무서웠고, 그것을 억지로 이겨내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지금 내뱉은 말을 후회하게 될 미래를 애써 무시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한니발은 서두르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빠른 동작으로, 코트에 팔을 꿰는 것조차 잊은 딘을 밖으로 내보내고 사무실을 잠갔다. 딘은 저보다 조금 작고 나이 든 상담가를 불안한 눈으로 뒤쫓았다.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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