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내/캐스딘] 리퀘 박스

    2023. 11. 19.

    by. 시두스

    키워드: 할로윈, 죽은 것이 돌아오는 날, 죽은 캐스, 캐스를 그리워하는 딘, 앵슷(?), 괴물

    분량: 공백 포함 약 5,400자

     


     

     

    10월 31일, 잃은 것이 돌아오는 날.

    그는 화장실 욕조에 걸터앉아 있었다. 마치 어제도 그랬다는 듯 자연스럽게,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욕조에 물을 받으며. 내가 알려준 제플린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흥얼거리는 소리가 나를 날카롭게 베어냈다.

    나는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문틈에 서서, 드디어 내 차례군, 하고 멍하게 생각했다. 캐스는 죽었던 날의 옷차림 그대로였다. 피해자들의 증언과 일치했다. 그들은 해가 쨍쨍한 대낮의 화장실에서 마지막으로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 이미 떠나간 사람이 그들을 맞이했다고 했다.

    참 웃기지도 않은 수작이다.

    “안녕, 딘.”

    카스티엘의 모습을 한 무언가가 말을 걸었다. 커다란 고양이가 그르렁거리는 것 같이 낮게 울리는 목소리. 아침에 돌을 씹어 먹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목소리가 나냐고 놀리던 기억이 선명하다.

    눈앞에 있는 것이 기억을 훔친 가짜라는 걸 알아도 속에서 감정이 북받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숨이 막혔다. 그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다시 어깨를 짓눌렀다. 무겁다. 캐스는 흐릿하게 웃었다. 나도 모르게 그만 죽고 싶어지는 웃음이었다. 그의 마지막 표정이 떠오른다.

    나는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그저 눈만 깜빡였다. 그러자 그것의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괜찮나, 딘? 피곤해 보이는군. 이곳에 들어오면 한결 나을 거다.”

    그것은 차분한 목소리로 반쯤 찬 욕조를 가리켰다. 내가 좋아하던 라벤더 향 배스 솔트를 뿌린 물이 연한 보라색으로 찰랑였다. 그것이 어서 이곳으로 오라는 듯이 앉은 자리 옆을 손으로 툭툭 두들겼다. 잔뜩 주름이 잡힌 얼굴과 감정이 담뿍 담긴 눈동자가 나를 유혹했다. 그것이 정말 캐스였다면 나는 이미 옷을 전부 벗어 던지고 물속에 앉아 한껏 피부에 닿는 따스한 입술을 만끽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놈은 가짜야.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몸, 똑같은 목소리를 가져도 저것은 내 연인이 아니다. 카스티엘은 죽었고, 그는 돌아올 수 없다. 우리는 헤어져 있을 운명이다. 적어도 내가 숨을 쉬는 동안에는 반드시 이별은 계속되어야 한다.

    저놈은 가짜야.

    “딘? 정말 네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제발, 나는 네가 걱정된다. 내가 네 곁을 떠나기 전엔 네가 이렇게까지 핼쑥하진 않았는데. 끼니는 잘 챙기는 건가? 잠은 잘 자고?”

    내가 다가가지도 대답하지도 않자, 캐스를 닮은 그것은 먹잇감을 꼬셔내는 맹수처럼 나를 응시하며 노련한 어부처럼 미끼를 던졌다. 걱정이 흠뻑 묻어나는 목소리. 점점 어두워지는 얼굴. 저놈은 가짜야. 나는 곱씹고, 또 곱씹는다. 그 사이에 그것을 더 응시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화장실에서 있을 리 없는 사람을 본 이들 중에서 이 마을의 전승대로 눈을 감고 문밖으로 나간 부류는 멀쩡했다. 이미 떠나간 사람을 본 건 환각이나 꿈으로 치부하는 듯했다. 잠시 마음이 아팠을 뿐, 별다른 해도 없었다.

    문제는 그들에게 말을 걸거나 직접 접촉한 이들이었다. 아주 잠시라도 ‘그것’과 연관되면 짧게는 하루, 길게는 한 달 안에 어떠한 증상이 발생했다. 기억을 잃는 건 대수고, 반쯤 미쳐서 헛소리하거나 현실과 환상이 뒤바뀌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피해가 다양하고 막심했다.

    괴물이 피해자에게서 무엇을 빼앗는지는 샘도 알아내지 못했다. 시체에서 장기가 사라지지도 않았고, 피해자의 소유물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사를 모조리 끝낸 다음, 샘은 이 괴물이 빼앗아 가는 것은 아마 영혼이 아니겠냐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영혼은 우리가 확인할 길이 없는 유일한 물체였다. 그렇기에 샘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그의 추측은 단지 추측에 머무를 뿐이었다.

    캐스가 있었다면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은 안 했지만, 우리 둘 다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어쨌든, 우리는 이 괴물이 만약에라도 영혼을 탐한다면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같은 평범한 놈은 아닐 거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할로윈에만 활동하고 정신적인 피해를 남긴다는 점에서 이미 알아낸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한 셈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스스로 희생양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괴물의 정체를 모르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으나 일반인보다는 우리가 노려지는 편이 조금이라도 더 나았다. 할로윈만 활동하니 무턱대고 기다릴 수도 없어서 내년을 기약하고 싶지 않다면 직접 나서야 했다. 왜냐하면, 우리 중 머리를 맡은 샘이 미끼가 될 순 없었다. 샘은 당연히 반대했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사냥에 미끼가 필요하다면 근육을 맡은 내가 나서는 것이 당연했다. 그 당연한 판단에 캐스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 섞여 들어갔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딘…….”

    캐스의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어두운 밤하늘에 뜬 달처럼 나를 구원했던 목소리를 무시하는 일엔 뼈와 살을 깎아내는 노력이 들었다. 주먹을 꽉 쥔 손에 손톱자국이 패였다. 어쩌면 피가 날 것도 같았다. 그것의 수법은 지나치게 잘 먹혔다.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같이 한 발짝 앞으로 내딛지 않으려는 의지가 점점 약해졌다.

    나는 오랜 연인을 안심시키고 싶었다. 난 여기서 잘 지낸다고, 네가 걱정할 일은 하지 않는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천국은 지낼만한지, 형제자매였던 천사들이 텃세를 부리지는 않는지, 네가 아닌 인간의 영혼으로서 천국에 돌아가서 한바탕 소란이 일진 않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냥 마지막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미안하다고도.

    “딘.”

    “캐스.”

    “딘.”

    고장 난 레코드플레이어처럼 딘, 딘,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나를 바닥으로 잡아당긴다. 캐스가 부르는 내 이름은 언제나 특별했다. 한 음절에 캐스처럼 많은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그 부름에는 화답해야 했다. 내 영혼이 필요하다고? 나는 심장까지 뽑아다 바칠 수도 있다. 과거의 나는 이미 그렇게 했을 것이다.

    캐스. 한참을 쓰지 않은 단어가 혓바닥에서 헛돈다. 캐스, 캐스.

    “이리로 와라.”

    나는 정말이지, 가고 싶었다. 다리가 부러진들 기어서라도 가고 싶었다. 캐스가 정말 살아 돌아온 것이라면, 그래서 정말 내게 욕조 물을 받아주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죽은 것은 죽은 채로 남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죽은 것은 죽은 채로, 산 것은 산 채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그럴 순 없어.”

    “왜지? 나를 기다린 것이 아닌가? 나를… 벌써 잊었나?”

    흔들리는 목소리가 심장을 후벼 팠다. 그럴 리 없다. 잊기는커녕 잊으려고 파내는 것조차 아파서 벙커에 있는 캐스의 방은 여전히 치워지지 않았다. 나는 마주하기조차 겁나서 그가 죽은 후로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다.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캐스, 내가 그럴 리 없잖아.”

    “그렇다면 어째서냐, 딘.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널 기다렸어.”

    “그렇다면 이곳으로 와라. 네가 좋아하는 그대로 준비해 두었다. 딘, 너는 아주 피곤해 보인다. 물에 들어와서 긴장을 푸는 편이 좋을 거다. 제발.”

    앞으로 제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 상황이 그대로 기억나겠군. 젠장. 그러나 덕분에 그것이 캐스가 아니라는 증거가 찬물처럼 나를 덮쳤다. 슬금슬금 속아 넘어가려던 의식이 또렷해진다. 정말 캐스라면 내가 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거절했다면 알겠다고 했을 것이다. 캐스는 내가 먼저 요구하지 않는 한 나에게 뭔가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

    이놈은 캐스가 아냐.

    주기도문처럼 읊조리면서 눈을 떴다. 언제 움직였는지도 모르게 나는 그것의 지척에 서 있었다. 그 옛날 나를 기다리던 캐스처럼, 그는 다리를 열어 내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뒀다. 나는 그 자리에 들어가 나를 경배하기라도 하듯 경건하게 움직이는 손길을 즐기고는 했다. 캐스의 품 안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고 따듯했다.

    “넌 카스티엘이 아냐. 어떤 끔찍한 새끼가 그 불쌍한 녀석의 탈을 썼는진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 알아두라고. 네가 나한테 접촉한 이상, 네 목숨은 이제 끝났어.”

    “딘? 그게 무슨 소리지? 나는 네가 아는 ‘캐스’다. 네가 정말 많이 피곤한가 보군.”

    그것은 캐스의 트레이드 마크인 인용 표시도 곧잘 따라 했다. 손가락 두 개를 찡긋거리는 순진하고 캐스다운 동작에 잠깐 심장이 멈췄다. 동요에 쐐기를 박아 넣기라도 하듯이 그것이 내가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러나 기세 좋게 일어난 것치고는 그 자리에 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그저 초조하게 나를 건너다볼 뿐.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내 영혼을 빨아들일 수는 있어도 먼저 다가오진 못하는 거군.”

    “딘, 나는 네가―”

    “연기는 끝내줬어. 우리가 ‘보다 깊은 유대’를 맺고 있지 않았다면 깜빡 속을 정도로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지?”

    “무슨 말이긴. 넌 이제 망했다는 거지.”

    그렇게 말하고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았다.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반짝이는 다양한 파랑을 포기하는 건 정말, 정말 힘들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뗀다. 화장실 문이 지척이었다. 한 발짝만 더, 또 한 발짝만 더. 문고리를 잡았을 때 캐스의 목소리가 물었다.

    “나를 쓰러트릴 수 있을 거로 생각하나?”

    “물론이지.”

    “어리석군. 나를 잡으러 오는 사이 희생자는 몇 명, 몇십 명으로 불어날 거다. 그 인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면서도 나를 추격하겠다는 건가.”

    “그래.”

    “여기서 나를 선택하면 넌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네가 그리던 이와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나를 저버리면 네가 얻는 건 내 싸늘한 시체가 전부일 거다. 그런데도 말이냐?”

    “그렇다니까.”

    “흥미롭군. 무엇을 위해서 그리하는 거지?”

    “뭘 위해서냐고?”

    아주 예전에, 나를 지옥에서 구원한 천사도 같은 질문을 했다. 무엇을 위해 스스로와 주변인들을 전부 희생하면서까지 종말에 맞서려고 하는지, 무엇이 그리도 중요해서 천국의 명대로 순순히 미카엘의 그릇이 되지 않는지. 그때 나는 가족이라고 대답했다. 잘 알지도 못하겠고 멀기만 한 안식과 평온 따위보다는 한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가족과 고통이 훨씬 낫다고 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렇게 먼 옛날의 일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내 천사 몸을 빌려서 이런 깜찍한 짓거리를 벌인 값을 톡톡히 매겨줘야 속이 풀리겠거든. 네가 사람을 덜 죽이게 되면 겸사겸사 좋은 거고.”

    최대한 냉랭하게 말했다. 정말 냉랭하게 들렸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 귀에는 절박하고 애처롭게만 들렸으므로. 애석하게도 괴물에게도 그렇게 들렸는지 뒤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웃음이 내 피부에 닿을 때 어떤 느낌인지 알았다.

    “강한 척을 하는군. 좋아. 넌 영혼을 걸었지만 난 잃을 게 없지. 그러면 다음에 보자고, .

    괴물이 킬킬 웃음을 터뜨렸다. 캐스의 목소리로 쏟아지는 캐스답지 않은 목소리가 내 피를 들끓게 했다. 나는 씩씩대면서 문을 격렬하게 열었다. 그리고 그것을 쾅 소리 나게 닫으려고 하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희미하게 꽃향기가 났다. 나는 그 향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댓글

전체 글 보기